사초(史草)와 사관(史官)
사초(史草)와 사관(史官)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1.19 00:00
  • 호수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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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환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여의도통신은 최근 특별한 작업을 수행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한 법안 2백건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투표결과를 분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법안 제안의 주체별(정부, 상임위, 의원) 비율을 따져 봤다. 각각 정부안(52건/26%), 상임위안(90건/45%), 의원안(58건/29%)의 결과가 도출됐다. 미국 의회의 법안이 거의 모두 의원안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전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의원안 29%는 너무나 왜소해 보인다.

그 다음으로 의원안 가결 순위를 따져 봤다. 1위는 박상돈 의원(4건), 2위는 최재성 의원(3건)이었다. 각 2건을 기록한 양형일, 김우남, 장향숙, 이경숙, 이계경, 이윤성, 서갑원, 김영주, 제종길 의원 등 9명이 공동 3위를 기록했다. 법안 내용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일단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이들 의원에게 칭찬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상임위별 가결 순위는 환경노동위(29건), 농림해양수산위(27건), 산업자원위(22건) 순으로 나왔다. 각각 1건과 3건을 기록한 여성가족위와 통일외교통상위가 뒤쪽에서 1, 2위를 다퉜다.

한편 반대와 기권이라는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대다수 찬성 표를 던진 타 의원들과 ‘이견’을 보인 의원들의 면면도 확인해 봤다. 그 결과는 △박세환 의원 36건(반대 16건, 기권 20건) △정화원 의원 31건(반대 3건, 기권 28건), △최순영 의원 27건(반대 16건, 기권 11건)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소신’을 지킨 것인지, ‘이해’를 대변한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선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의도통신은 두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욕설과 야유 등 회의 중 발생한 사소한 것까지 샅샅이 기록돼 있는 국회 회의록에 정작 결석의원과 불참의원의 명단은 적시돼 있지 않았다는 점과 작년에 처리된 법안 4백54건 중 2백건이 12월 한 달에 몰려 있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보 151호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 한국사 연구에서 차지하는 가치를 ‘비행기의 블랙박스’에 비유해 설명한 바 있다. 블랙박스를 발견하지 못하면 비행기 폭발사건의 의혹을 풀어낼 수 없듯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역사의 블랙박스가 없었다면 결코 수많은 역사의 진실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공식적인 역사편찬의 1차 자료가 되는 기록을 사초(史草)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도 춘추관시정기, 승정원일기, 의정부등록,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과 더불어 사관(史官)들이 작성해놓은 사초가 있었기에 쓰여 질 수 있었다.

사초 기술의 특징은 사실을 남김없이, 숨김없이, 상세하게 기록하는 것에 있다. 사도세자의 비극이 ‘경종실록’에 기록돼 있던 ‘게장’과 ‘생감’이라는, 어쩌면 아주 사소할 수도 있는 음식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단적인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여의도통신은 한국정치의 진실에 접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관’이 되고자 한다. 우리가 이번에 정리한 의원들의 투표 결과 기록이 ‘게장’과 ‘생감’처럼, 한국정치의 진실을 해독하는 ‘작지만 중요한’ 단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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