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2.16 00:00
  • 호수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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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많은 미래학자들은 21세기가 평화와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21세기는 테러와 전쟁으로 그 서막을 열었다.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테러와 전쟁의 공포가 엄습했고,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소말리아전쟁 등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물론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고 후세인은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오늘도 이라크 반군의 반격은 멈추지 않고 있으며, 하루 24명의 젊은 미국 청년들이 테러 종식과 전쟁 승리라는 명분을 위해 생명을 잃고 있다. 지금 미국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인이 깊은 회의에 젖어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 그런 세계인들에게 용서와 사랑의 교훈을 생각하게 만드는 두 사람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는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성악가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출신지가 다르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이고, 호세 카레라스는 카탈린 출신이다. 카탈린은 마드리드 지배하의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해 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은 성악가로서 라이벌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라이벌이다. 두 사람은 같은 무대에도 서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던 중 카레라스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최고의 명성을 날리고 있던 1987년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결국 그는 혈액 암과 투병하느라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 동안 벌어놓은 돈도 모두 치료비에 소진되고 말았다.

그때 카레라스에게 한 줄기 희망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마드리드에 있는 허모사재단병원이 백혈병 전문병원으로 유명하다는 전언을 접한 것이다. 당장 그곳으로 찾아간 카레라스는 병원의 도움으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해방된 카레라스는 다시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는 자신을 살려준 허모사병원에 보답할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허모사병원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그는 재단의 창립자이며 CEO가 다름 아닌 자신의 최대 라이벌인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카레라스는 더욱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도밍고가 카레라스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병원을 설립하고서도 그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다는 사연이 바로 그것이었다. 카레라스가 도움을 받으면서 자칫 자존심을 상할지도 모른다는 배려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도록 했음은 물론이다.

깊은 감동을 받은 카레라스는 어느 날 마드리드에서 열린 도밍고의 공연장을 찾았다. 그리고 공연 중인 도밍고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관객이 보는 앞에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애원과 함께. 도밍고는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힘껏 껴안았고, 관객은 눈물의 기립박수로 훌륭한 친구로서의 언약을 굳게 맺은 두 사람을 축복했다.
용서와 사랑은 이와 같이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그 위대한 힘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세계의 평화를 구원하는 날이 오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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