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은행나무의 저력
늙은 은행나무의 저력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3.16 00:00
  • 호수 3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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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순
인간개발연구원 명예회장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의 서울대 건물들은 천편일률로 성냥갑 같은 4층 건물이어서, 학교의 모양은 똑같은 규격의 기차가 무질서하게 들어선 기차정거장과도 같았다. 황량한 건물 주변에 부랴부랴 나무가 심어졌는데, 내가 학장을 한 사회과학대학 7동 앞에는 은행나무가 들어섰다. 그 중 한 나무는 딴 나무보다는 월등히 커서, 굵은 가지가 다 잘려 보기 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음해 봄이 오니 은행나무들은 고운 잎을 피웠다. 그러나 가장 큰 나무에서는 전혀 잎이 나오지 않았다. 가을이 돼도 그 나무껍질은 거무스름히 말라들고만 있었다. 나는 학장회의에서 제발 빨리 그 나무를 뽑아가라고 독촉했다. 그러나 사무국장 말은 달랐다. 그 나무는 심은 사람이 와서 뽑아야 다른 나무로 교체할 수 있으니,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봄이 와도 그 나무는 살아나지 않았다. 나무를 뽑는 사람도 오질 않았다. 다른 나무는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데, 이 나무의 흉물스러운 모습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아! 웬일인가. 초여름에 접어들 무렵, 그 나무에서 움이 돋기 시작했다. 그 움은 다른 나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굵고, 검푸르고 두꺼운 잎은 싱싱하기 짝이 없었다. 참으로 기적과 같은 광경이었다. 죽은 사람의 시체가 관 뚜껑을 제치고 일어서서 주위를 일갈하는 모습이었다. 거의 2년 동안 그 나무는 잔뿌리를 새로 내려서 영양을 껍질 밑에 비축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빨리 뽑아가라고 다그친 내가 부끄럽기만 했다. 그 나무를 지날 때마다 “내가 너로부터 많이 배웠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픈 심정이었다.

얼마 전 인간개발연구원의 차이나클럽에서 내가 ‘중국 경제발전의 문화적 기초’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그 강의에서 나는 중국은 ‘괴물’과 같아서 사회과학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나라라는 말을 했다. 사회과학자들은 서양사회를 분석하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중국과 같은 매우 이질적인 거대한 나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또 중국은 위에서 말한 은행나무와 같은 저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까지의 150년 동안 중국은 거의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재생을 위한 저력을 비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의 다른 모든 고대문명이 다 죽었는데, 오직 중국의 그것만이 살아남은 이면에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저력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큰 은행나무의 모습, 그것이 오늘날의 중국의 모습이다.

세계의 문명에는 시대의 변천에 적응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타입도 있고, 스스로의 정체성조차 상실하는 타입도 있다. 중국문명은 전자에 속함으로써, 어려운 시대를 견디어내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이 저력이 다른 문명에 젖은 사람들에게는 괴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 두 개의 머리를 가지고 질주(疾走)하는 괴물, 이것이 오늘의 중국의 모습이다.

이 괴물의 저력은 여간해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괴물이 아니라 대단히 큰, 그러나 시장경제이면서도 사회주의일 수밖에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편집자>인간개발연구원 월보에 한 주 먼저 소개되는 조순 칼럼은 본지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여의도통신의 취지에 공감을 표한 필자와 연구원의 동의 하에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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