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반대 이전에 할 일
신자유주의 반대 이전에 할 일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3.30 00:00
  • 호수 3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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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

최근의 이른바 ‘진보논쟁’을 통해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용어가 있다. 바로 (반)신자유주의다. 개혁 성향의 창조한국미래구상은 반-신자유주의 진보대연합을 꿈꾸고,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을 제안한다. 손호철 교수는 이번 대선의 주된 전선으로 신자유주의를 꼽고, 최장집 교수는 “재벌경제체제를 지속시킨”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의 대안으로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거론한다. ‘신자유주의 반대’는 이 시대 진보세력의 ‘정언 명법’이 되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반대하자는 말인가. 이런 논의들은 ‘반대’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때 공허하기 짝이 없는 동어반복으로 전락한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며’ ‘신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란 것이다. 이 분들의 말과 글 속에서 신자유주의라는 기표가 가리키는 것은 양극화, 한미FTA, 노동의 수량적 유연화, 사회경제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동의 배제, 재벌, 사회의 기업화, 시장관계의 심화 등 끝없이 열거할 수 있는 ‘사회적 악(惡)’ 중 일부이거나 전부이다.

그러나 기실 이 같은 항목들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양극화 등)이거나 자본주의 그 자체의 경향성(시장관계 심화, 고용 불안정 등)에 불과하다. 결국 이번 진보논쟁은, “진보세력이라면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어떤 것’을 지독히 싫어해야 한다”는 ‘정보’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사회적 효과를 거뒀을 뿐이다.

필자는 신자유주의를 ‘국민적, 국제적 차원의 금융화와 이의 사회·경제·문화적 효과’로 좁게 정의해야 IMF 사태 이후 새롭게 나타난 현상들을 해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금융화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이런저런 사회경제 영역들(기업, 노후생계자금 등)을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금융화란 예컨대 예전엔 마음대로 사고팔 수 없었던 기업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꾸고 이런 거래가 국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업운영의 목표를 성장이나 고용에서 ‘금융투자자(주주)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단기간 내에 돌려주나’(ROA, ROE 등의 지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는 저투자-저성장 현상의 원인이기도 하다. 투자자가 기업 경영권을 구입한 뒤 비싸게 되팔려면 구조조정으로 비핵심 부문과 노동자들을 축출해야 한다.(사모펀드) 이를 국가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등의 제도로 지원한다.

이 같은 투자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소액주주운동이다. 금융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재정정책(물가인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큰)을 점점 더 꺼리게 된다. 이 같은 ‘투자자 보호’는 한미FTA 등에서의 투자자-국가소송제 조항으로 절정에 달한다. 또한 시민들의 생활자금인 연기금, 고용보험기금 등을 국내외 주식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조치에 따라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 금융시장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진보진영은 IMF 사태 직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무지 때문에 국민경제에 대한 초국적자본의 공격을 ‘개혁적’이라고 평가하면서 심지어 갈채를 보낸 ‘전과’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신자유주의 반대’를 가장 선명하게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이 가장 선명한 신자유주의자들과 때로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 관전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면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더욱 정확하고 설명력 있게 다듬고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집단적 노력이 절실하다. ‘반대’를 논의하기 이전에 반대해야 하는 대상부터 명확히 하자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할 것인지, 편승할 것인지, 적극적으로 적응할 것인지는 다음다음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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