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의 진짜 3불(不)은?
한국 대학의 진짜 3불(不)은?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4.06 00:00
  • 호수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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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우
전 국회의원
여의도통신 논설주간

대학의 신입생 자율선발, 기여입학의 허용, 고교등급제 실시 등 3가지를 대학이 할 수 없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 이른바 3불(不)이다. 이를 불가(不可)에서 가(可)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대학들이 들고 일어났다. 물론 정부 당국은 이러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무엇보다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미 한국의 대학은 오래 전에 서열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근원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은 그 자체로 권력이다.

한국 사회를 유지하는 힘의 원천이다. 대학을 매개로 합종연횡하는 각종 인맥은 지배층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여기에 들어가는 것은 한국 사회에 사는 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 따위로 순진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서열화 된 대학은 모든 수험생을 서열화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거의 다 대학엘 간다. 어찌 보면 대학도 의무교육이 되었다. 이렇게 서열화 된 대학 구조를 변화시키기는 그리 쉽지 않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수능 등급제는 사실 서열화 된 대학에 학생들을 배분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런데 이것도 못마땅해서 한국 대학들은 본고사, 기여입학, 고교등급제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고교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1등급에서 9등급의 품계를 받는다. 그것은 곧 이후 부와 권력의 등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리고 이것은 그 시스템 속에서 세습된다. 이러한 사회구조가 고착화 되면 고려의 음서제도, 조선의 서원처럼 면역력이 약화되는 사회가 될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것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아니 바꿀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 맞을 것 같다.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고 在新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다.”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대학(大學)이라는 말의 기원을 상고해볼 수 있거니와, 대학 즉 큰 배움의 3대 강령은 명덕하고, 신민하며, 지선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 대학의 진정한 3불은 바로 이 대학의 3대 강령이 부재(不在)한 것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명덕하지 못하고, 신민하지 못하고, 지선하지 못하는 한국 대학이 본고사 못하고, 기여입학 못하고, 고교등급 못매기는 것만 탓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차라리 이 기회에 서울대를 법인화하고 국립대를 없애면서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방향으로 전향적인 대안을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렇게 되면 서울대는 흔한 말로 시베리아의 찬바람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지원으로 온갖 특권을 누려왔고, 여전히 누리고 있는 서울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학생 선발의 특권이 아닌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온갖 특권을 누려온 서울대가 이제 와서 세계 10위권 대학 진입의 걸림돌로 3불정책을 지목하는 것은 보기에도 딱하다.

서울대는 그런 진단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스스로 자격 미달임을 증명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서울대가 불안함을 느끼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지금 대학입시를 축으로 벌어지는 교육의 혼란은 한국 사회가 아직도 허약하다는 반증이다. 교육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는 리더십과 더불어 국민들의 대오각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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