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제강점기
끝나지 않은 일제강점기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4.27 00:00
  • 호수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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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하면 떠오르는 것이 ‘장항제련소 굴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자랑거리인지 치욕인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LS니꼬동제련이 자회사 ‘이앤알’를 내세워 폐자동차 잔재물 소각사업으로 굴뚝을 활용하겠다고 나선 시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군은 어메니티 서천 이미지 훼손 등을 내세워 사업을 불허했지만 행정소송에서 져 사업신청서가 다시 군에 접수됐다.

장항읍 장암리 바닷가에 전망산을 끼고 자리 잡은 장항제련소는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인 1936년에 건설됐다. 우리 땅의 귀금속 수탈를 위해 일본이 세운 것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조업이 중단됐다가 1962년 국영기업인 한국광공업 제련공사가 맡았다. 70년대 엘에스(LS)의 전신인 럭키와 풍산금속, 대한전선이 ‘한국동제련주식회사’를 설립했고 결국 온산제련소까지 흡수하면서 엘에스가 주인이 됐다.

필연처럼 1999년 일본의 J.K.J.S.와 만나면서 ‘LS니꼬동제련’이 된 것이다. 제련소 굴뚝의 연기가 사라지기 전까지 제련소 동네, 장암리 사람들은 바다의 소산물과 더불어 제련소 굴뚝 값으로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되짚어 보건데, 장암리 사람들은 풍요를 누린 것이 결코 아니다. 일제의 탐욕으로 제련소가 건설되면서 주민들은 제련소 담 밖으로 강제 이주됐다.

물론 보상 같은 건 없었다. 그들은 일제, 군사독제, 경제권력 밑에서 부스러기를 얻어먹으면서 배곯지 않는 대신 야금야금 자신들의 삶의 터전과 건강을 빼앗겨 온 것이다.

주민들은 터전을 내주고 쫓겨난 대가로 제련소 소유라는 땅에서 살아 왔다. 터무니없게도 제련소가 민간에게 넘어가면서 매년 대지 임대료를 엘에스니꼬동제련에 내면서 살고 있다.

하구둑이 금강과 바다의 소통을 막으면서 황금어장까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장암리는 70년대 모습으로 대부분 70·80의 노인들이 사는 생기 잃은 곳이 되어버렸다.

바람에 날려간 대기오염은 근거를 확보할 수 없다지만, 제련소가 배출한 오염물질로 토양오염이 심각하다. 책임은커녕 각종 화학물질로 구성된 ‘폐자동차 잔재물 소각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소각 때 발생하는 여타 유해물질도 있지만 특히 ‘다이옥신’의 발생은 치명적이다. ‘다이옥신’은 자연분해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물질로 아무리 미량이라 해도 꼬박꼬박 쌓이는 유해물질이다. 때문에 ‘다이옥신’을 일러 ‘신(神) 중에 가장 무서운 신’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또 혹자는 핵폐기장은 100년에 한번 올까말까 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폐자동차 잔재물 소각사업’은 위험성이 상시 존재하고 총량의 증가로 갈수록 그 위험성이 커져 핵폐기장보다 더 위험한 시설이라 한다.

이렇다보니, 법적으로 LS니꼬동제련이 소각장 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했다 해도 주민들로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허나 LS니꼬동제련과 사법부의 대 주민 대응은 방식은 일제강점 시대를 방불케 한다.

소각장반대 주민대책위 공동대표 2인을 상대로 한 ‘업무방해 가처분신청’이다. 이 사업과 관련해 두 사람은 일상에서나 인터넷상에서 입도 뻥긋 할 수 없도록 했다.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는 사안이라 판단해 집회를 갖고 예견되는 피해를 홍보하는 행위가 원천봉쇄 당한 것이다. 아마도 장암리의 일제강점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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