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다는 것
참는다는 것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5.11 00:00
  • 호수 3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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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머리를 식힐 겸 <한국설화집>에서 이야기 한 토막 소개한다.

   

▲ 박서림/칼럼위원

옛날 한 총각이 나이 30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가고 있다가 어떻게 해서 한 노처녀하고 결혼하게 되었다. 이 노처녀가 시집이라고 와 보니 집이라고는 가난하기 짝이 없어 서 발막대기 거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서방이라는 것이 기운이 세서 일은 곧잘 하지만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서야 쓰겠나 싶었다.

생각 끝에 남편을 공부시켜 어떻게든 과거에 급제케 하려고 마음먹고, “집안 살림은 내가 맡을 테니 당신은 공부나 하시오” 하고는 서당에를 보냈다.

서당에를 다니면서, 하늘천 따지를 배우는데, 한자를 더 가르치면 앞에 배웠던 글자는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훈장은 할 수 없이 일평생 사는데 꼭 필요한 글자만 가르쳐 주어야겠다 생각하고 “인지위덕(忍之爲德)-참는 것이 덕이다”라는 뜻의 네 글자만 가르치기로 했다. 그런데 머리가 어찌나 둔한지 참을인, 갈지 ,하위 ,큰덕 하고 한자 한자 가르치는데 그만 한자에 석 달씩 걸려서 1년이 걸렸다. 그리고 인지위덕으로 붙여서 가르치고 뜻을 알게 가르치는데도 1년이 걸렸다. 인지위덕이라는 것을 2년 걸려 배운 셈이다.

다 배우고 나니까 훈장은 다 배웠으니 그만 집으로 가라고 했다. 서당에서 글을 다 배웠다고 돌아온 사내가 배웠다는 것이 겨우 인지위덕 넉자였으니 아내는 그만 기가 막혔다.

이것 가지고는 과거는커녕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겠기에 아내는 더 공부하라 하지 않고 돈이나 벌게 장사나 하라고 돈 몇 백 량을 내주면서 돈이나 벌어 오라고 했다.

남편은 돈 벌러 간다고 나가서 장사를 하는데 그 둔한 머리에 장사가 되겠는가?  돈을 벌기는커녕 밑천까지 다 까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는데, “나 돌아왔소” 하는데도 반가히 맞을 줄 알았던 아내가 나오지를 않는다. 그 때는 여름날이라 방문이 활짝 열려 있기에 방안을 들여다보니 이럴 수가 있는가?  아내가 웬 사내를 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남편은 그만 벌컥 화가 나서 속으로 소리를 쳤다.
“이것이 내게 돈을 주어 내보내더니, 딴 사내를 끌어 들여? 에라! 연놈을 죽이고야 말겠다.”

그리고는 마루에 있는 큰 다듬잇돌을 번쩍 들어 방으로 들어가서 박살을 내려는 그 순간이었다.

그의 뇌리에 서당에서 배운 인지위덕이라는 말이 반짝 떠오르는 것이었다.

“‘인지위덕,인지위덕 참는 것이 덕이 된다고 했지?”
그는 들었던 다듬잇돌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고 화를 삭이고 있는데 아내가 인기척을 느끼고 낮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제 오셨소” 하고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옆에 자는 사람을 깨우며 말했다.

"얘야, 어서 일어나거라. 형부 오셨다."
그러자 옆에 누워 있던 사람이 일어나는데 그는 남자가 아니라 처제였다.

처제가 모처럼 찾아와서 하도 더우니까 머리를 감고 풀상투처럼 올리고 쉬느라고 잤는데 얼른 보기에 남자가 자는 것 같이 보였던 것이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가정의 달이라고 하기엔 민망하게도 이혼율이 날이 갈수록 늘어 가고 있다. 드라마를 봐도 걸핏하면 이혼이다. 아이 생각은 다음이다. 기껏 생각한다는 게 이혼부부가 아이를 함께 기르는 요령(?)을 가르치고 있다.

인지위덕, 노년에 참다 참다 못해 이혼하는 할머니는 논외로 하자.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데 한 번쯤 참아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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