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야 뭐라든
남이야 뭐라든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5.25 00:00
  • 호수 37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조순 / 인간개발연구원 명예회장, 전 경제부총리

자유란 무엇인가. 누구든 법에 걸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말과 일을 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하고 싶은 말과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설사 법에 걸리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남의 눈치를 보느라고 할 말을 못하고 할 일을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진정한 자유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자 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유와 비례한다고 본다. 자유 없이 행복한 사람은 없다. 눈치만 살피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랜드 러셀이 나이가 20여세 됐을 때 북경대학에 교환교수로 온 적이 있었다. 그는 중국에 관한 그의 관찰을 <The Problem of China>라는 좋은 책에 담았다.

거기에서 러셀은 중국에는 아주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이 많지만 그들은 의외로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남이 뭐라 하든 개의치 않기 때문에 그런 태도가 나온다.

나는 6.25사변 당시 한 때, 미국군인들 숲에서 산 적이 있다. 나는 그때, 그들이 전우(戰友)와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야말로 만리타국에 와서 생사(生死)를 같이 하다가 헤어질 때, 그들은 그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담담한 얼굴로 “So long!” 또는 “Goodbye!” 한마디에 석별의 정을 담는 것을 보았다.

꼭 좋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역시 대국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미국에 가서 대학 학부과정을 다녔는데, 학생 중 성적이 나빠서 학교를 떠나는 모습을 더러 보았다.

학우(學友)와 헤어지는 그들은 평상시나 다름없이 정정당당(?)하게 ‘잘 있어!’ ‘잘 가!’ 하는 것을 보았다. 학교를 떠나는 학생의 마음은, “그래, 난 성적이 나빠서 학교를 떠나는데, 뭐가 잘못된 것이 있나? 학교를 안 다녀도 딴 일을 하면 되잖아”였을 것이고, 보내는 학생은 “아! 그래, 잘해봐”일 것이다. 서로가 이렇게 낙관하는 것이다. 어딘가에 멋이 있다고 나는 보았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을 함부로 하거나 멋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반대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않을수록 공연히 남에게 폐를 끼친다거나, 무례한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그만큼 남에게 배려를 해야 한다.

이것은 눈치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눈치를 보지 말라는 것은 쓸데없이 남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구하거나,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할 말을 못하거나 옳은 일을 하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말이다.

남의 눈치 보지 않는 지성인 많았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도 많고 여러 가지 좋은 능력을 타고났지만, 가끔은 지나치게 남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닐까. 눈치를 살피는 습성을 가진 사람들은 확고한 자기주장이 있을 수 없다. 항상 한쪽으로 쏠리는 형상이 나오고, 자기 것을 지키지 못하고 강한 자의 비위를 맞추며, 유행에 민감하다. 예쁜 얼굴이 성형외과로 다 똑같이 된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지성적인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성적인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책읽기를 좋아하고, 많이 생각하고 일에 신중한 반면, 자기의견을 활발히 내놓고, 자기능력과 처지에 따라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공자(孔子)는 말했다. ‘군자는 서로 화목하지만 같지는 않다. 반면, 소인은 서로 같은데도 화목하지 않다(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또 ‘좋은 사람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다(君子之交, 淡如水)’는 옛 말이 있다. 담담한 물과 같이 깨끗하고 허욕이 적은 사람이 많아야 나라가 평화롭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