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종이 인형에 담긴 꿈
닥종이 인형에 담긴 꿈
  • 뉴스서천
  • 승인 2001.02.21 00:00
  • 호수 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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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방학은 정말 길다. 그래서 그 긴 방학을 알차게 보내고자 많은 학생들은 도서관으로 향하거나 배낭 하나만을 멘 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아르바이트를 통해 땀의 소중함을 깨닫기도 한다.
나는 그 방학 동안 일상 생활에 묻혔다는 이유로 관심밖에 있었던 것을 찾아보는 시간으로 보냈다.
‘김영희 작품 전시회’를 찾아 간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였다. 비가 오락가락 하던 일요일, 대전시내에 있는 한 화랑에서 김영희의 닥종이 인형을 만날 수 있었다.
화랑에 들어서면서부터 포근함을 안겨주는 닥종이 인형이 반긴다. 잠시 벽에 붙어있는 간단한 안내문을 읽고 시선을 돌리면 40여 점의 인형들은 서로 제각각 포즈를 취하며 시선을 빼앗는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소녀의 이미지를 닮고 있다. 누구일까? 작가의 자화상이라도 되는 듯 모든 인형들은 너무나 한국적이다.
‘책 읽어주는 엄마’, ‘하얀 박을 든 아이’, ‘참외서리’ 등 모든 작품이 우리의 어렸을 적 모습을 기억 그대로 담고 있다. 작가는 2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고국을 떠나 생활했으면서도 평면이었던 종이가 지니고 있는 가벼움만이 아닌 또 다른 힘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이 인형들이 독일에서 온기가 불어넣어졌는데도 이국의 색깔은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닥종이’라는 재료부터가 한국적이고 그 인형들의 생김새나 몸짓도 우리를 대신한다. 그리고 인형들이 내뱉는 소리 역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묻어 나올만한 목소리이다.
“인형들은 독일에서 만들었지만 닥종이는 한국에서 가져간 거예요.”라고 말하는 작가. 그래서일까?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종이의 질까지도 느낄 수 있다. 구김과 부드러움이 교차한다. 그러나 그 재질 속에 묻어있는 것은 결코 가벼움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어머니 인형에는 애틋한 감정이 섞여 있고 웃고 있는 자식의 입가에서는 행복이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전시된 인형들은 통통하다. 입술도, 볼도 서양의 미적 가치와는 동떨어져 있다. 마치 그 동안 우리가 맹목적으로 동경했기에 무의식적으로 그렸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모든 산이 항상 푸른 것이 아니고 바다도 언제나 잔잔하지만은 않듯 닥종이 인형 역시 너무나 ‘서민’적이다.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잊고 있었기에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더욱 정겹고, 구김살 없는 웃음소리가 어깨너머로 들려올 듯하다. 바랜 색이 더욱 곱게 다가오고 꿈과 희망을 갈망하는 메시지 역시 선명하다.
그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정신이었다. 우리의 생활 그 자체였다. 아스팔트 위에서 버린 시간들을 느끼지 못하듯 생각 없이 지냈기에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징그러울 정도로 동심을 담아내고 희망을 노래한 작가의 인형들에게서 시선을 옮길 수 없는 것이다.
마침 작가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특강 중에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예술은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저는 제 작품에 제 마음을 담죠.”
그 인형들은 작가, ‘김영희’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옛 것을 소중히 여기고 느끼고 싶어하는 것. 시간이 빠르게 흐름에 따라 세대간의 동질성은 점점 찾기 어렵지만 그런 생활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고 싶어하는 모습. 이국에서의 오랜 세월이 의미하듯 이미 작가의 얼굴에서도 시간의 그림자는 숨길 수 없었지만 시간이 흘렀기에 당연히 잊고 지냈던 과거를 억지로 찾고 싶어하는 작가가 아니었을까? 언젠가는 돌아갈 우리의 꿈이 간직한 곳을 갈망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도 방송에서는 팝 음악이 흐르고 있고 우리의 드라마는 중국을 비롯 동남아에서 한류(韓流)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의 영화는 국내 시장 점유율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4대 영화제에서도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으며 ‘사물놀이’, ‘난타’ 등은 문화상품으로 성공하여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불과 40여년 전의 자화상은 잊고 있지 않았는가? 지금은 시골에서도 볼 수 없을 듯한 모습에서조차 희망을 찾고 싶어하는 작가. 그래서 인형의 색감도 보다 더 밝게 칠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슬방울, 빗방울을 손에 모으고 있는 소녀 인형. 그 인형을 보며 작가가 한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예술은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양 원 준 / 한밭대학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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