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늙지 않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늙지 않소”
  • 최현옥
  • 승인 2002.07.11 00:00
  • 호수 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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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교환일기 쓰고 있는 부부의 사랑이야기
인스턴트식 사랑은 ‘NO’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는 냄비사랑은
더더욱 ‘NO’
우리는 평생 달아오르는
‘온돌방 사랑’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의 주례사가 황혼이혼의 급증으로 옛말이 되어버린 요즘 존경과 섬김의 도량으로 살아가는 부부가 있다.
6년전 marriage encounter(ME)에 가입하면서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실천하는 전중석(60·남·마서면 한성리), 윤옥순(62·여) 부부는 오늘도 책상에 마주앉아 돋보기 안경을 쓰고 교환일기를 읽는다. 벌써 한 권을 훌쩍 넘어 두 권 째로 접어드는 교환일기는 부부의 삶을 재조명하며 빛이 되고 있다.
“펜을 잡을 때마다 남편의 한없는 사랑에 은혜와 감사로 눈물을 흘린다”는 윤씨는 처음 결혼 할 때처럼 지금도 남편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다 전하지 못함이 항상 안타깝단다.
남편 전씨는 “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부인과 짤막한 여정을 걸으며 내 인생에 더 이상의 고달픔은 없었다”며 앞으로 험한 삶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맹세한다.
이처럼 황혼의 나이에도 부부가 서로를 존경하며 애틋함으로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려 사랑의 향기를 전하는 것은 순탄치 못한 결혼과 삶의 절망에서 시작된다.
수녀로 살고싶었던 부인 윤씨는 22살의 나이에 안면부 장애(구개열)가 있는 남편 전씨를 만난다. 남편을 보는 순간 외적인 모습에 놀라움도 컸지만 한남자의 인생을 지켜주고 싶은 모성애 역시 그녀를 엄습하여 숙명적 느낌에 사로잡힌다. 남편 전씨 역시 아름다운 마음과 성품을 갖춘 윤씨에게 마음을 빼앗겼으며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서두른다.
문학 지망생 전씨는 결혼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평생의 꿈이었던 문학의 길을 접고 농사일에 전념하며 틈틈이 시와 일기를 쓴다. 신체적 불구로 항상 비관적인 삶과 사고를 가지고 살았던 전씨는 결혼 후에도 마음을 시로 달랬고 비관적 삶의 여정을 걷는 남편의 모습은 윤씨에게 짐으로 느껴졌다.
윤씨는 결혼 10년이 되던 해 새로운 결단을 내린다. 평생의 업보처럼 느껴지는 일기장과 시를 모두 태워버리고 남편의 구개열 수술을 하기로 결심한 것.
3차례의 수술로 전씨의 안면부와 언어장애는 어느 정도 개선되었지만 시를 잃은 그는 생의 모든 것을 잃은 듯 술로 나날을 보냈고 집안은 부부관계에서부터 경제적 악화로 파탄을 향해갔다.
‘97년 ME를 소개받았을 때 문제 부부 중심의 교육이라는 선입견에 불안함이 컸다“는 전씨는 교육장에 가서 아직 서로의 가슴에 사랑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눈물의 편지를 섰다.
그리고 부인 윤씨에게 사죄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오늘까지 쉽게 달아나 버리는 말보다는 영원히 간직되는 글로 사랑을 전하기 위해 교환일기를 쓰고있다.
“낡고 헤어진 일기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다”는 부부는 사랑은 서로를 이해하고 참는 것이라며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알콩달콩 살아갈 것을 약속하며 펜을 든다.

사랑하는 부인
5년의 흐름 속에서 당신에게 드리는 나의 옹졸한 글이 한 권의 노트에 채워지고 또 한 권의 노트에 그려지는 구려.
이 하나의 존재 때문에 고귀한 당신에게 고달픈 여정의 험난한 길을 걷게하는 것 같아 무어라 말할 수 없구려. 육신은 볼품없이 노화가 됐더라고 당신만을 사랑하는 마음은 늙지 않소.
여보 고맙소
-전중석씨 일기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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