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에게 공권력은
주민에게 공권력은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10.05 00:00
  • 호수 3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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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어린 자식이 경찰에게 도둑으로 지목돼 노상에서 수색을 당했다. 추석연휴기간에 실제 있었던 일이다. 백성에게 있어 공권력은 보호막이지만 도가 지나치면 공포의 대상이 된다. 공권력에 대한 백성들의 공포, 박정희 독재나 5·6공 군사정권 때는 대개가 공감하는 구조였다. 민중들과 친밀감을 내포하고 있는 현 정권인 참여정부 하에서도 공권력에 대한 백성들의 공포는 여전하다.

개인에게 있어 공권력은 상대하기 힘들고 설령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보통 당찬 마음이 아니고서는 대항해서 싸우겠다고 결정하는 데까지 많은 고민을 하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공무집행방해’를 적용하면 안 걸려들 사람이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가는 차 세워 음주단속을 해도 당연히 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경찰이 중학생에게 한 일에 대해 경찰의 반응은 “그럴 수 있지 않느냐”는 다소 위험한 것이었다. 또 사건의 본질보다는 ‘그 여자’라며 과히 좋지 않은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여자’는 아들하나 키우는 모자가정의 가장이다. 이사회에서 혼자 사는 여인이 겪어야 하는 많은 질고를 겪었다. 이곳저곳 이사 다니다가 서천 땅에 정착하게 됐다.

모자는 보호시설에서 몇 년이라도 맘 편히 살고자했다. 아들이 번번이 도둑으로 몰렸고 보호자가 없는 상태에서 추궁을 당해왔다. 이에 따른 항의와 시설관리의 여러 가지 부당함을 항변해 왔다.

이번에도 경찰에 강하게 항의했다. 전화로, 그다음에는 해당 경찰 지구대로 찾아가서이다. 경찰들 말대로는 다짜고짜 욕이며 난동을 부렸다했다. 원인 없이 다짜고짜 화를 내고 난동을 피우는 사람이 ‘그 여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측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원인 제공은 ‘그 여자’가 아니었다. 아들을 노상대로에서 친구 보는 앞에서 욕보였다.

그 어머니에게 왜 화를 내느냐고 말할 수 있는 게 이 사회에서 수용이 되는 일인지 묻고 싶다.

‘그 여자’는 그동안 삶의 경험으로 누가 자기편이 되어 함께 싸워준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주눅 들지도 않았고 입바른 소리를 잘 한다.

사람들은 ‘할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 입으로는 ‘그래야 된다’고 말하지만 그 대상이 힘 있는 공권력에 대해서라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게 사람들이 바른말을 하지 않고 딴전을 피우는 원인이기도 하다.

‘천방산 불상건립은 안 된다’하면서도 막상 허가권자인 군수의 실정을 추궁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뒤로 물러나는 기독교 지도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또 입버릇처럼 ‘서천군 공무원들 문제 있다’면서도 막상 군정모니터단에 끼는 것, ‘군의원들 밥값도 못 한다’면서 의정비심의위원 위촉도 한사코 사절한다. 힘 있는 공권력과 맞서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는데 민중들은 ‘민중의 지팡이’를 자처한 경찰, ‘주민의 머슴’을 자처한 공직자들에게 당당하지 못하다. 너무 긴 세월 동안 공권력의 횡포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 악습을 불식시키는 데는 입바른 주민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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