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커플? 제가 만들죠!”
“행복한 커플? 제가 만들죠!”
  • 최현옥
  • 승인 2002.07.18 00:00
  • 호수 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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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하시길…”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는 것이 모자라 엄지손가락으로 도장을 찍고 사인까지 주고받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결혼이 지닌 그 신성한 의미를 온전히 발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이혼률이 증가하면서“오늘 결혼하는 두 분은 앞으로 같이 살아보고 평생 마음이 맞으면 계속 같이 살고, 살다가 마음이 바뀌거나 괴롭고 실망스러운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갈라서기 바랍니다”라는 가상 주례사의 우스개 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세태 속에서 9백여회의 주례를 서며 행복한 커플의 배출을 지상과제로 삼고 백년 기약을 업으로 살아가는 강대순(72·마산면 신장리)씨를 만났다.
“많이 주례를 섰지만 결혼은 사람에게 제 2의 탄생이므로 저에게 주례는 항상 신부의 가슴처럼 떨리는 일이며 신성하기만 합니다”
수줍은 신부의 발걸음만큼이나 신중한 대답을 토해내는 강씨가 처음 주례를 보게 된 것은 마산 면장으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다. 그의 나이 31살에 주례 청탁을 받고 연륜이 없어 망설였지만 부부의 백년기약을 하는 신성한 일이기에 승낙을 했다.
“주례를 서기 위해 식장에 들어선 순간 젊은 자신의 모습에 하객들이 신랑으로 오해를 해 곤란함을 겪었다”는 강씨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재미도 있고 가슴이 떨린다.
하지만 방송국 보조아나운서의 이력을 살려 주례를 무사히 마친 강씨는 그때부터 주례사로 활동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 후 강씨는 22년 간 면장을 하면서 시초, 한산, 마산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 주례 청탁을 받았고 서울중앙신탁에서 일하는 기간에는 마치 직업주례사가 된 듯 한 달에 10회 정도 단상에 섰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주례사례금도 주고 결혼도 호화스럽게 했지만 그 당시 주례 사례로 와이셔츠와 양말이 전부였다”는 강씨는 점점 호화스러워지는 결혼풍습을 보면 씁쓸함이 앞선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 정한수 한 그릇을 떠놓고 백년가약을 맺어도 자식건사 잘하며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해로했기 때문. 그러나 지금은 과거 보다 풍족해 졌지만 마음은 더욱 피폐해져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허례허식만 남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래서 근래 강씨는 주례사에서 ‘영원한 연분을 맺고∼’라는 멘트는 삼가 한다.
하지만 부모님께 효를 실천하고 항상 건강하며 근면, 성실하여 가정에 화합을 이끌어 내라는 말은 900여회를 훌쩍 넘어선 지금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도 결혼당시 주례사가 해주었던 말 그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으며 때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다른 부부들이 실천하도록 전하고 싶다.
강씨는 한산, 마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가끔 영문도 모르는 대접을 많이 받는다. 나중에 알고 보면 그가 주례를 서주었던 부부인 경우가 많은데 사실 9백여회의 주례를 서다보니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끔 만나게되는 부부들이 “자식들 잘 건사하고 아내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주는 모습만으로 감사함이 크다”는 강씨는 주례를 통해 얻은 것이 더 많단다.
그의 주례는 한 집안의 대를 잇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이 주례를 섰던 친구 자녀들이 또다시 주례를 부탁할 때 보 잘 것 없는 자신을 믿어주는 모습에 감사함이 크다.
요즘은 건강상의 문제로 대부분의 주례를 거절하지만 건강이 허락되면 평생의 약속을 맺는 주례를 계속하고 싶은 강씨는 사랑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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