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불감증이 부른 대재앙
안전불감증이 부른 대재앙
  • 허정균 기자
  • 승인 2007.12.14 00:00
  • 호수 39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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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미국이 네바다주 사막의 유카산에 사용후 핵연료인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추진하면서 난관에 부딪친 것은 불안정한 지질 구조 때문만이 아니었다. 네바다주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방사성폐기물의 이동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 전역에는 10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핵폐기물을 열차를 통해 이동하든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을 하든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 인근을 피할 수가 없으며, 이렇게 거미줄처럼 얽힌 열차선로 혹은 고속도로를 통해 수많은 방사성폐기물이 이동하게 되면 각종 안전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핵폐기장 반대의 논리였다.

이처럼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핵폐기장 건설을 두고 한국에서는 국가가 폭력을 동원하여 밀어붙이려 했다. 2003년 전북 부안군 위도에 세우려 했던 고준위 핵폐기장이 그것이었다. 위도는 활성단층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91년도에 이미 부적격 판정을 받았는데도 이를 강행하려 하였다. 서천 군민들도 이에 반대해 일어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같은 안전불감증이 결국 대재앙을 불러들이고야 말았다. 지난 7일 아침 태안 앞바다에 정박중인 유조선이 예인선에 이끌려 남쪽으로 향하던 크레인 부선에 부딪쳐 원유 1만여톤이 바다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사고는 인천대교 상판 설치작업을 마치고 거제로 가던 해상 크레인이 유조선에 부딪치면서 일어났다. 부선을 예인하던 삼성중공업 소속 예인선 2척 가운데 1척의 강선이 끊어지면서 크레인 부선이 중심을 잃고 떠내려가 정박해 있던 유조선과 충돌한 것이다. 지름 4.75mm의 강선은 높은 파도 때문에 끊어졌다고도 하고, 위험을 알아차린 예인선단이 급히 방향을 바꾸기 위해 회전을 하다가 한쪽 강선에 하중이 쏠려 끊어졌다고도 한다. 예인선단이 방향을 바꿀 때는, 부선이 정지한 상태에서 예인선들이 60도 이상 각도를 잡고 속도를 맞춰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한 대산지방해양수산청 관제실이 사고 발생 2시간 전에 예인선과 교신을 시도했으며 1시간여 전에는 휴대전화로 예인선 선장에게 “대형 유조선이 근처에 있으니 피해서 운항하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사고는 피하지 못했다. 안전불감증으로 해상안전은 실종돼버린 것이다. 강선이 끊어진 것이 강한 파도 때문이라면 인천에서 그것을 예인할 당시 강한 파도를 이겨낼 만큼 연결 강선이 튼튼했는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더구나  7일 사고 해역 일대 지역주민들이 흡착포 등 방제 장비를 요청했으나 지급하지 않았고, 만 하루가 지난 8일 아침 7시까지 어떤 마을도 해안 방제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해양수산부는 사고 직후 사고 해역이 육지에서 먼 바다라는 점, 그리고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 등등을 운운하며 그리 큰 피해가 없을 것이라 낙관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뉴스서천> 기획취재팀이 독일 니더작센주 갯벌국립공원 관리청이 있는 빌헬름스하벤에 갔을 때 갯벌살리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파르케 박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가장 두려운 것이 유조선”이라며 “유조선이 사고가 나 기름이 쏟아지면 지난 30여년간의 노력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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