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바람에 여름더위 삼십육계”
“부채바람에 여름더위 삼십육계”
  • 최현옥
  • 승인 2002.07.31 00:00
  • 호수 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채장 충남도 지정문화재 이한규씨
전통 이으려 60여년 장인 외길 인생 살아온 이씨.
그가 만든 공작선은 선녀의 날개!

무더운 여름이 되면 그늘 넉넉한 느티나무 밑 평상에 누워 할머니가 부쳐주는 부채바람에 소록소록 잠들던 추억은 지금도 아름답다.
할머니가 흔드는 부채자루는 세상의 근심·걱정 모두 씻어내는 평화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부채장으로 사람들에게 시원한 여름을 제공하며 세상사 잊던 향수를 불러주는 충남도 지정문화재 부채장 이한규씨는 전통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며 공작선을 만들고 있다.
8평 남짓한 공방에 들어서자 이씨는 그 흔한 선풍기 하나 없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편해져도 이것 없이는 여름나기 어렵지”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소(小)자리 공작선을 우아하게 부치는 한씨는 깊은 계곡에서 탁주를 즐기며 부채를 부치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민속화를 연상시켰다.
과거 공작선은 숫컷 공작의 꽁치 털로 만들었지만 지금은 한지에 공작무늬 잔털을 그려 그 모양이 유사하다. 부채의 모양은 날개를 활짝 편 부챗살과 공작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손잡이로 보기만 해도 그 깃털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올 것 같고 공작의 날개를 타고 하늘이라도 나는 기분이 든다.
이씨는 부채 만드는 일이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가업으로 해오던 일이라 부친의 잔일을 도우며 기술을 습득하고 있었지만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공작선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며 전통을 이어야 겠다는 생각에 60여년 장인의 외길인생을 걸어왔다.
공작선은 현재 백화점이나 서울 골동품상에서 외국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나 하나 만드는데 4일정도 시간이 걸려 물량 공급에 어려움이 많다.
이씨의 장인정신은 재료선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대나무는 3년생으로 이듬해 음력 7월 15일 전후 1개월 동안 밴 것이나 9월 그믐부터 이듬해 2월까지의 것을 사용한다. 이는 이 시기의 대가 벌레가 슬지 않고 질이 좋기 때문이다.
또한 공작의 머리형태를 하고 있는 자루는 박달나무나 괴목·느티나무를 선정, 손 연장을 사용해 깎아 공작 머리 형태를 이룬 후, 사포를 이용해 3단계로 표면을 곱게 다듬어 윤기를 낸다. 자루와 살이 완성되면 살 양면에 무명 천을 바르고 한지를 덧씌워 풀기를 말린다.
대나무 살이 마주 닿는 부분은 접착제를 쓰는데 이 때 한지가 부챗살에 완전히 밀착되도록 빈틈없이 누르는 데는 이씨의 섬세한 손길이 요구된다.
이렇게 반정도 완성되면 잘 마른 한지 위에 먹으로 공작무늬 잔털 등을 세밀하게 그려 넣고 콩가루로 만든 기름을 먹인다. 그 위에 들깨 기름을 3-4차례 발라 말리고 천으로 닦아 윤기를 내면 하나의 공작이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하게 된다.
이씨는 전통방법에 새로운 것들을 접목했다. 먼저 장식용에서 탈피하여 실용성을 높이기 위해 크기를 대·중·소로 나눴으며 공작털 변색을 방지하기 위해 색을 빼고 먹으로만 그림을 그린다. 벼슬은 나무로 하면 쪼개지므로 쇠를 붙이고 작업의 편리성을 위해 접착제를 사용한다.
“무엇이든 결심이 커야 할 수 있다”는 이씨는 아들이 후계자로 지정이되 기쁘고 가업을 이어주길 바라고 있다.
산업의 발달로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시대, 장인의 정신이 배어있는 공작선을 부치며 느림의 미학을 배워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