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성, 특별 보존대책 필요하다
남산성, 특별 보존대책 필요하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2.25 00:00
  • 호수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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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소정방이 거느리고 온 당군에 협격을 당한 백제는 마침내 660년 7월 13일 사비성이 함락됐다. 공주로 탈출했던 의자왕도 사비도성 함락 후 엿새만에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였다.

소정방은 9월 3일 의자왕을 비롯한 왕족과 대신들, 그리고 일반 백성 등 1만 2,807명을 압송하여 당의 수도인 장안으로 되돌아갔다. <삼국사기>에 전하는 내용이다.

금강하구를 끼고 있는 우리 군은 백제의 수도 사비성의 관문 역할을 하였다. 당나라 군사들은 금강하구 기벌포를 통해 상륙하였으며 이곳을 통해 되돌아갔다. 이들에 의해 당으로 끌려가던 백제 사람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강요당했다.

백제의 부녀자들이 끌려가는 지아비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배웅했던 장소가 바로 남산이었다고 구전되어온다. 이러한 망국의 한맺힌 설움은 ‘남산놀이’라는 형태로 기억되며 전해 내려왔다.

이같은 내력이 있는 남산의 정상을 감싸는 테뫼식산성이 백제시대에 축조된 남산성이다. 성둘레는 620미터이며 서문과 남문 자리가 있으며 정상부위에는 지금도 깨진 기왓장이 발견되는 등 건물이 있었던 흔적이 확인되고 있다.

남산성에 대한 중요성은 1990년대에 들어서 본격 제기되어 1993년에 진입로를 개설하고 1995년에 도 지정 기념물로 지정됐다. 그 후 2001년부터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04년 2차 발굴조사에서는 결과 2차 발굴에서 ‘西林君’(서림군)이라고 새겨진 다량의 기와조각들이 발견됨으로써 남산성이 옛 서림군의 읍성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남산은 해발 170m에 불과한 산이지만 시야가 좋아 멀리 북으로 서면, 동으로 마산, 남으로는 금강은 물론 군산시까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관망권이 넓은 게 특징이다. 따라서 남산성이 복원되면 국가적 문화유적으로 발돋움 하는 동시에 서천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남산성에 대한 군 행정은 서천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전임군수가 ‘난시청 해소’라는 공약에 따라 중계탑 설치를 승인하여 남산성 정상에 철탑이 들어서 있다. 이는 대외적으로 서천군의 수치로 인식되고 있어 반드시 철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도와 군은 남산성 발굴·복원 작업을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대신 내포문화권 개발사업과 연계하여 서천읍성의 복원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발굴작업이 진행되는 도중 이를 다시 덮고 나중에 재개하게 되면 훼손이 더욱 심해진다는 지적이 있다.

예산 문제 등으로 남산성 발굴이 뒤로 밀렸다 할지라도 남산성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다. 남산성의 가치와 그 중요성이 확인된 이상 더 이상의 훼손이 없도록 특별한 보존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백제의 관문인 금강 하구를 바라보는 남산성은 금강유역 백제문화권의 한 축을 차지하는 위치에 있다. 서천군민들의 자산인 남산성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일은 서천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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