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교육 정상화, 무엇이 문제인가? -⑥<최종회>
■ 공교육 정상화, 무엇이 문제인가? -⑥<최종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5.05 00:00
  • 호수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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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나아간다 -2

   

권기복
칼럼위원

넷째, 교육이 권력과 돈을 쥐어주는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도양 북부에 위치한 크리스마스 섬에서 홍게 연구를 20년째 하고 있다는 영국인 연구원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영국 정부에서 특별한 지원도 없는 것 같고, 자신들의 연구에 대해 조급해 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저 홍게가  번식기를 맞이하여 대이동을 할 때마다 한 달 정도의 휴가를 오는 것처럼 연구하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리의 ‘황우석 박사 사건’이 기억났다. 빠른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기 위한 조급성, 지원금을 대 주었으니 빨리 결과물을 내 놓으라는 정부의 독촉은 없었을까? 또한, 황 박사는 더 많은 지원금을 받기 위한 지나친 제스처에서 비롯된 섣부른 판단은 아니었을까?

사악한 동물로 여기는 뱀 연구, 악마의 화신으로 여기는 악어 연구 등, 동식물을 비롯하여 미지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서양의 학자들, <로마클럽> 같이 직원 서너 명이 조사하고 연구한 결과를 발표해도 지구상에 큰 영향력을 갖는 그들을 보면, 우리에게 아쉬운 점이 참 많다. 권력과 돈보다 이 세상에 더 나를 흥미롭게 해 주고, 더 살맛나게 해 주는 것이 많은데, 우리 한국인은 왜 권력과 돈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려 할까? 일평생을 홍게 연구에 바치는 영국인 학자가 제 정신이 아닌 걸까? 아니면, 한 때 1등 아닌 나를 기억할 수 없다면서 법관입네, 의사입네 하며 현실의 이득만 갈취하는 부류가 멋진 삶을 사는 걸까?

한국의 젊은이들은 의대나 법대 지향성을 당장 버려야 한다. 제각각의 분야에서 학문과 과학, 예술 탐구를 통해 미래를 밝게 열어주는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진정한 기쁨은 권력이나 돈을 손에 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미래의 보물을 찾아내는 데 있을 것이다.

다섯째, 학벌과 학력보다 실력과 품성을 갖춘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우리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부른다. 이는 사회적 학습을 통해 인간다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인류가 축적해 놓은 학문의 양은 방대하다. 그래서 평생 공부해도 부족하다는 말을 한다. 심지어 <공부하다가 죽어라> 라는 제목의 책도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오늘날이 평생학습 시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 때의 학벌과 학력에 목을 매달고 있다. 평생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다.

학창시절 1등과 2등, 1등과 10등의 차이가 얼마나 될까? 1등 학생은 대학 졸업 후에 학습을 접고, 10등 학생은 그 이후에 10년을 더 자기 공부를 했다면 진정 누가 더 실력 있는 사람일까? 한 때 1등이 영원한 1등이 아니다. 10등, 아니 100등을 한 사람이라도 자기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고 꾸준히 자기 것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 1등의 인생이다. 또한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 공부를 자랑하지 않는 법이다. 그저 당연하다고 여길 뿐이다.

오늘날은 학습량이 너무나 많고, 시시각각으로 그 내용도 변화하기 때문에 과거의 학벌과 학력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못 된다. 학벌과 학력은 일천하더라도 평생교육 차원에서 실력과 품성을 갖춘 사람이 요구된다.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도 갖지 않고, 남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다. 맑은 호수는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고여 있지 않는다. 외부에서 느끼지 못하게 내적으로 끊임없이 새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제 속도 다 보여주지만, 그 어느 것도 비춰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으로 품계를 구분 짓는 유치한 나눗셈은 그만 하자. 특히, 학력중심이라는 구실 하에 청소년들을 모두 정신병동에 집어넣는 우를 범하지 말자. 우리 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과연 바람직한 모습인가 아닌가를 분명히 식별하자. 학벌과 학력보다는 실력과 품성을 갖춘 사람이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정부도 학력지상주의의 교육 정책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남녀노소가 나름대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극소수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전인교육이 더더욱 절실하다. 학업성적 1등이 무조건 우리 사회의 1등이 아니라는 점을, 학업성적 꼴등이 무조건 우리 사회의 꼴등이 아니라는 점을 서로 인식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잘 하는 것도 있고, 잘 하지 못하는 것도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서로서로 등을 긁어주며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얼마나 개운하겠는가?

지금까지 ‘공교육 정상화,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문제를 갖고 연재를 해 보았다. 학력 만능주의로 가는 현 세태에 대해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의 병은 뼛속 깊이 스며들 것이다. 청소년들이 공부벌레로부터 벗어나서 심신의 단련과 호연지기를 기를 방법은 없을까? 우리 사회가 학벌과 학력에 의해 편가름이 되는 상황을 탈피할 수는 없을까? 평생 학문을 연구하고, 그 연구 과정을 즐기는 진정성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근대 이후 역사학계를 지배하는 ‘발전론적 역사학’은 중세의 암흑기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중세라고 하여 수레바퀴가 멈춘 것이 아니라,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계속 굴러왔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도 제 자리에 멈추거나 거꾸로 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교육의 수레바퀴도 정부와 국민 모두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합심하여 앞으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행복은 권력이나 돈에서 나오지 않는다. 행복은 행복하다고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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