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협상과 한·미FTA
쇠고기 협상과 한·미FTA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5.13 00:00
  • 호수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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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균
편집주간

지난 4월 18일 한미간에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며 ‘광우병 공포’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협상 타결은 한우의 가격 폭락과 함께 축산 농민의 자살을 불러왔다. 누리꾼들에 의해 미국 축산업계의 실태가 속속 알려지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국민들에게 발등의 불로 다가왔다.

그동안 각종 매체를 통해 알려진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은 크게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미국은 아직도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이고 있다. 이로 인해 소에게서 광우병이 발생하고 있지만 도축시 검역을 거치는 것은 이 가운데 0.1%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광우병발생 소의 99%를 차지한다는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와 뼈까지 수입한다.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갈비구이, 설렁탕, 곰탕, 냉면 육수, 라면스프, 해장국, 조미료에 이르기까지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가게 되었다.”

건강생명권이 위협받게 되자 마침내 국민들은 ‘직접행동’에 나섰다. 한 포털사이트에 마련된 이명박 탄핵서명에 서명한 국민이 120만명을 넘어섰고 급기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5월 17일에는 등교거부까지 하겠다는 소식도 들린다.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부안에 고준위 핵폐기장을 강요하며 일어났던 ‘부안사태’와 유사하게 치닫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일에는 17대국회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쇠고기 청문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검역주권을 포기한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라”는 주문이 쏟아져 나왔다. 궁지에 몰린 정운천 장관은 "광우병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타결된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는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생하더라도 이것이 국제수역사무국(OIE)가 미국에 부여한 '광우병 통제 국가'의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에만 우리 정부는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게 되어있다. 다시 말해 수입 중단 여부는 우리 정부가 아닌 국제수역사무국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는 의미이다.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수입을 중단한다면 이는 결국 미국과의 통상 분쟁을 불러올 수 있다.

이번 협상으로 아무도 사가지 않는 소뼈와 내장, 30개월령 이상의 소까지 팔아먹을 수 있게 된 미국이 한국의 일방적인 결정에 따를 리는 만무하다.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7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한국 정부가 협상과정에서 안전성 문제에 매우 엄격한 입장을 견지·관철시켰던 만큼 현재 합의문 틀 안에서 얼마든지 쇠고기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이미 합의된 한미 쇠고기 협상내용을 재협상하거나 합의문을 개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미국과의 이같은 합의는 국제법적으로 구속력이 없다는 해석이 있다. 미국과의 합의는 한국 농림부 장관의 정책 수행상의 약속에 지나지 않을 뿐, 한국이 이를 이행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한국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미국에서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 권한을 한국이 갖는 것으로 고치더라도,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쇠고기 수입개방의 근저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한미FTA)가 있다. 쇠고기 수입 개방은 미국이 요구한 4대 선결조건 가운데 하나였다. 사실 미국이 한국과 FTA을 체결하려는 주목적은 자국의 농축산물을 거리낌없이 수출하자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쳐놓은 장벽을 하나하나 허물고 있는 것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이득을 보는 세력은 한국과 미국의 초국적자본이다. 기업인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이같은 한·미FTA 체결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이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는 자본의 속성은 결국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며 쇠고기 협상을 체결하였다. 한미FTA를 체결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당장의 코앞에 닥친 먹을거리의 위험성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쇠고기 수입개방은 한미FTA로 가는 전 단계에 불과하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한미FTA를 맺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쇠고기 협상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자 이번 임시국회에서 한미FTA 비준 조속처리를 주장하던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도 방향을 틀었다 한다. 국민적 저항의 시선이 미국산 쇠고기에 멈추지 않고 그 뒤에 있는 한·미FTA로 향한다면 정치인들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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