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공법과 ‘명박산성’
유조선 공법과 ‘명박산성’
  • 허정균 기자
  • 승인 2008.06.16 00:00
  • 호수 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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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균
기자

6월항쟁 21주년이 되던 지난 10일 세종로 네거리에서 아침 출근길의 시민들은 괴이한 광경을 보아야 했다. 대형 컨테이너 박스가 2층으로 줄지어서 광화문으로 올라가는 길을 차단하며 철옹성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출근길의 시민들은 많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네티즌들과 언론에 의해 ‘명박산성’으로 이름 붙여진 이 컨테이너 성벽은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벽체에는 구리스를 잔뜩 칠해놓았으며 바닥에 철심을 박아 고정시켰다. 컨테이너 사이는 용접을 하여 견고하게 연결하였으며 내부는 모래를 채워놓아 사람 힘으로는 움쩍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성벽이 이날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수십만의 인파를 완벽하게 차단하였다.

그러나 이는 국민들 뿐만 아니라 외국에까지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민의를 수렴해야할 정부가 오히려 이를 차단하는 거대한 상징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를 보며 정주영이 서산지구 간척사업 때 고안해 낸 ‘유조선 공법’을 떠올렸다.

현대건설이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얻어 서산시 부석면을 중심으로 홍성군 서부면과 태안군 남면 사이를 잇는 방조제의 끝물막이 공사가 1984년 2월에 있었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남은 구간이 260m가 되었을 때에는 10톤이 넘는 바위도 밀려나가는 초속 8.2m의 유속이 나타났다. 이때 고안된 공법이 유조선공법이다. 방조제 사이를 유조선으로 가로막고 유조선탱크에 바닷물을 넣어 바닥에 가라앉힌 다음 조수의 유입을 차단하여 물막이 공사를 성공시킨 것이다.

이때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의 대표이사로 이 공사를 지휘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밀려드는 조수를 유조선으로 막아내듯 촛불문화제에 모인 수십만 인파를 컨테이너를 쌓아올린 ‘명박산성’으로 막아냈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보인 정치란 것은 이같은 방조제 건설하듯 밀어붙이기식으로 일관하였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치가 아니었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오랜 토목공사 현장에서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현대건설이 청계천 복개공사에 참여하여 동대문 오간수다리에서 제2청계교까지 공사를 진행하던 1965년에 현대건설에 입사하였다. 이후 1977년에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이 되었으며 1988년에는 현대건설 회장이 되었다. 그가 1992년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단 한번도 현대건설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동안에 그는 서산지구 간척사업 외에도 영산강2지구(1978~1982), 낙동강하굿둑(1983~1987), 시화지구(1987~1996) 등의 간척사업을 벌여 세계5대 갯벌 가운데 하나인 한국 서해안갯벌을 파괴하는 중심에서 일을 해왔다. 온갖 생명체의 보고인 갯벌을 생매장시킨 이러한 공사판이 그의 인성을 황폐하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때 축적된 대형 토목공사 경험이 그를 대운하 착공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 세종로에서는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마저 방조제 막듯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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