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목표 ‘경쟁력 높이기’인가
교육의 목표 ‘경쟁력 높이기’인가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9.04.27 14:10
  • 호수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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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도교육감을 다시 뽑는 선거를 이틀 앞두고 각 후보들의 득표전이 치열하다. 대부분의 후보측에서는 ‘나만이 충남 학생들의 경쟁력을 높일 적임자’라며 열을 올리고 있다.

투표권을 가진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귀에 솔깃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정작 교육 정책의 시행 대상인 학생들의 입장은 어떨까. 생존 경쟁의 장인 기성사회에서 굳어진 부모들의 잘못된 사고가 선거판을 저렇게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교육(敎育)’이라는 말은 <맹자>의 진심편(盡心)에 실려있는 ‘군자삼락(君子三樂)’ 가운데의 하나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敎育而三樂)’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교육을 그리스어로는 ‘페다고지(pedagogy)’라 하는데 이는 ‘어린이’라는 뜻의 '페이데(peide)'와 ‘이끈다’라는 뜻을 지닌 ‘고고스(gogos)'의 합성어라 한다. 이처럼 교육은 근본적으로 인간애(人間愛)로부터 출발하며 상대편 인간에게 영향을 끼쳐서 그로 하여금 가치있는 모습으로 성장하게 하는 사회기능이다. <맹자>에서 말하는 '군자의 즐거움’이란 바로 여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교육은 나라의 백년대계’라는 말도 이를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을 바라보는 눈은 이같은 원론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교육의 목표를 명문대 진학해서 좋은 일자리 찾는 데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상대평가일 수밖에 없는 대학입학 시험 준비에 매몰되고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함양할 시기의 학생들은 획일적인 무한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토양 위에서 지난 15일 공개한 수학능력시험 공개에서 충남이 전국 최하위 수준으로 나타나자 각 후보들은 이를 개탄하며 ‘자신이야말로 아이들의 학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최적임자’라며 갖가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후보들이 급히 만들어 내놓은 이러한 정책들에는 차별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교육 선진국’이라는 북유럽 핀란드에서는 과외, 학원, 등수를 매기는 시험, 일류고등학교 등이 없다고 한다. 쉽게 말해 교실 안에 ‘경쟁’이라는 것이 없고 누가 몇 등이냐를 가리는 교육이 아니라 각자 지닌 소질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여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 교육이라는 것이다.

지난 90년대 문민정부 시절에 불던 ‘세계화’의 바람이 신자유주의로 귀결되면서 ‘경쟁력이 최고의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이같은 현상이 교육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일류대 가는 것이 목표이고 이를 발판으로 대기업 들어가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버린 오늘 우물안 개구리식의 경쟁이 교육 현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돈 많은 집 아이들이 사교육 더 많이 받고 좋은 대학, 좋은 기업에 들어가 사회적 양극화 현상은 더 확대되고 있다. 이를 억제하여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지닌 정부는 오히려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자립형사립고나 특목고에 낙방한 학생들을 위한 자율형사립고의 확대 시행이 바로 그 단적인 예다.

이제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교육혁명’이 절실한 때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를 주고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책임과 의무, 권리 등이 강조되는 교육 본래의 기능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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