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숨쉬는 서천읍
문화가 숨쉬는 서천읍
  • 뉴스서천
  • 승인 2002.10.24 00:00
  • 호수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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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길 칠백보쯤 발걸음 속에 즐거움이 있다. 길섶의 풋풋한 풀내음, 붉게 물들어 가는 고추, 토실토실 자리잡아 가는 무, 겹겹이 속이 차가는 배추. 너무나 정겨운 모습에 서울을 떠나 이사 오기를 잘 했구나 여겨진다.
어느 해 던가 이맘 때 홍산 진등재를 넘어가니 누렇 누렇한 들판을 가로질러 난 길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펼쳐진 코스모스가 반겨 즐거움을 주던 일이 생각난다.
마을 뒷산 (화양면 옥포3리) 듬성듬성한 바위 사이로 이름 모를 들국화 피어나고 꽃밭에 팔 벼개하고 들어 누워서 파아란 하늘 사이로 종달새인지 콩새인지 연신 날아다니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동경하던 어린시절. 된장에 풋고추 안주 삼아 막걸리 사발째 들이 켜며 객기를 부리던 젊은 날들에 실 웃음이 절로 난다.
고구마 캐서 풀섶에 쓱쓱 문질러 먹고 입술이 시퍼렇던 옆집 친구, 밭 두렁 콩 꺾어다가 구워먹고 온 손이 검댕이던 건너 뜰 친구도 떠오른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그 뒷동산 허리를 메워 고속도로가 생겨 마을이 두 동강이 났다고 하니 지금도 꽃피고 새 노니는지 궁금하다.
문득 이왕에 생긴 고속도로·하구언이라면 외지사람 거친 발길 들여 놓을 수 없도록 ‘문화의 다리’로 가꾸면 낭만과 정겨움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추억의 고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파리를 가로 질러 흐르는 세느강은 실제로 생각처럼 넓거나 물이 맑지가 않다. 그러나 양안의 에펠탑·루브르 박물관·노틀담성당·자유의 여신상 등도 유명하지만 그 보다 유람선을 타고 전설과 유래가 깃든 다리들을 지나치며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내 마음 깊이 아로 새기리라/ 기쁨은 언젠가 고통 뒤에 오는 것을…” (미라보 다리 중에서) 모더니즘 예술을 발족시키는데 큰 몫을 했던 서정시인 아폴리네르의 멋 또한 대단하다.
금강하구언을 ‘시의 향기’가 흐르는 명소로 가꾸고 철새 찾아오는 금강 뱃길을 따라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촬영지로 소문난 한산 신성리의 갈대밭 까지 고기잡이 체험도 즐길 수 있도록 정비하고 시인 석초의 숨결이 흐르는 문화행사를 기획, 펼치면 영원히 남는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꼭이 값비싸고 호사스런 유람선이 아니라도 틀스런 목선을 띄워 노를 젓고 바람을 타고 밀려가는 멋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이어서 한산모시문화와 축을 이루는 목은 선생·월남선생의 족적을 더듬는 이벤트도 고려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며 인근에는 토질에 맞는 생강단지 등 특산물 단지를 별도로 조성하고 부엉바위 저수지에 치어를 많이 풀어 강태공들이 즐겨 찾도록 유인하는 내륙지방을 연계, 개발하고 기존의 춘장대해수욕장을 축으로 한 해안지방은 별도로 동백꽃을 겨냥한 마량포 해돋이에 문화가 꽃 필 수 있도록 기획, 주꾸미·전어 축제 등을 잇는 일정에 ‘앉은뱅이 술’ 소곡주 한잔을 곁들이면 서천에 취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책임 있는 분들이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효율적인 홍보를 하면 패키지관광상품으로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며 이 때 고향을 등지고 장항선에 몸을 실었던 이들도 긍지를 갖고 시집 온 여인네 평생 친정을 그리듯 하나, 둘 고향을 찾지 않을까.
<김지용 / 컬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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