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배운 사랑 보답하고 싶어요”
“부모님에게 배운 사랑 보답하고 싶어요”
  • 최순우 기자
  • 승인 2010.06.07 17:48
  • 호수 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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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상 수상자 노을・오연숙・황선태

 

▲ 효행상 수상자 노을 ▲오연숙씨 ▲황선태씨
지난달 2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제22회 효행상 시상식이 열렸다.
전국 내로라하는 효자·효녀가 모인 이 자리에 8명의 서천인들이 이사장상을 수상했다.
이중 눈에 띄는 세 사람과의 가슴 벅찬 인터뷰, 뜨거운 햇살 속 오후의 그늘을 간지럼 피는 그들을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황금빛 태양의 해맑은 웃음 ‘노을’양

서천여고에서 만난 첫 번째 수상자는 노 을(19·서천읍)양.
현재 고3 수험생이다. 먼저 수상 소감에 대해 물었다. 이에 노을양은 “효행상 수상했던 얘기는 사실 시상식 전날 알았어요. 생각도 못했는데, 할아버지가 저를 추천하셨다고 어머니가 시상식 가기 전날 얘기해주셨거든요” 이어 그녀는 “장녀라서 그런지 어머니가 어린나이에 결혼하시고 우리들을 키우느시라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할아버지나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도 자연스러워 진 것 같아요”
주변에서 말하는 노을양은 어떤 학생일까? 한참을 깊이 생각한 김은자 교장은 “틀에 박힌 듯 해보이지만 노을이는 정말 경로효친사상을 생활 속에서 직접 실천하는 학생이라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배운 바를 그대로 실천해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효녀’. ‘소녀’, ‘효녀’. 재밌지만 노을이는 정말 천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수상 경력을 보니 초·중학교 때부터 노을양은 빠지지 않고 효행·선행상을 받아왔을 정도로 주변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고.

효부맘은 며느리도 모른다 ‘오연숙’씨

인심 좋은 시골 아낙을 그린 민화 속에서 막 나온 듯 한 오연숙씨(53·종천면)씨.
지난 1일 그녀를 만난 곳은 ‘산모도우미’ 수업이 한창인 문예의 전당 내 한 교실에서다.
며느리가 나중에 아이를 갖게 됐을 때를 대비해 산모도우미 공부를 하고 있다는 그녀는 포근한 인상에 어딘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구차한 수상 얘기보다 뭔가 특별한 얘기를 듣고 싶던 기자의 맘을 알아차린 건지 그녀가 먼저 ‘시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그거 아세요? 먼 옛날 전설에 나온던 그런 사람, 우리 어머님은 그런 분이셨어요. 뭔가 속 깊고 배려심 많은... 때론 티격태격 신경전을 치르기도 하지만요(웃음)” 오늘날 그녀의 효부상 수상 뒤엔 언제나 시어머니의 자리가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오씨는 이번 시상식에서 시어머니에게 이상을 바치겠노라 몇 번을 그렇게 되뇌 였다고 했다. 오씨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요즘도 인근 노인전문병원과 노인복지기관 등을 돌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천농어촌공사 황선태씨의 ‘사모곡’

그때를 생각하면 황선태(58)씨는 늘 배가 고프다. 가난했던 농촌의 삶과 어린 우리 7남매를 위해 늘 부뚜막에서 배를 곯으셨던 어머니.
매년 효행상이다 뭐다해서 그의 이름 뒤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과찬의 미사어구들.
하지만 정작 그에게 어머니와 가족의 존재를 묻는 이는 많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황선태’라는 이름을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늘 어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진지하고 겸손한 어조로 인터뷰 내내 온화한 인상을 선물한 황씨는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마냥 배가 고팠다’는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증조부와 조부모의 오랜 병수발로 늘 지쳐 보였던 나의 가슴 속 어머니.
장남이라는 이유로 황씨는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조부모의 병수발과 어린 다섯명의 동생들과 조카들의 학비를 지원해 주는 것으로 어머니의 뜻을 묵묵히 이어갔다.
그런 그가 요즘은 장학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지역 내 어려운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위해 애쓰고 있다.
“아직도 지역 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신다고 들었는데...”
“... 꿈을 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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