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손한 ‘윗 것’
불손한 ‘윗 것’
  • 박노찬
  • 승인 2002.11.28 00:00
  • 호수 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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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TV를 보노라면 소위 ‘아랫 것’으로 불리는 하인들이 상전에게 불손했다하여 곤장을 맞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과거 엄격한 신분사회 속에서 감히 상전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하찮은 파리목숨으로 여겨지던 아랫것들이야 얼마나 경을 쳤을 것인가?
하긴 성춘향이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상전의 ‘야한 밤’을 위해 수청을 들라는 지엄한 분부를 거역하고 불손하게 고을의 수장인 변사또 앞에서 ‘여필종부는 어쩌구 저쩌구~’했으니 목숨이 살아날리 있겠는가?
정보의 시대라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인터넷을 통해‘불손’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그 유명한 인터넷 사이트인 야후(yahoo) 백과사전에서는 ‘검색 결과 없음’으로 나온다. 아마 현대사회에서는 ‘불손’이란 단어가 필요치 않다고 여겨져 오퍼레이터가 아예 단어를 입력치 않았던지, 아니면 예의를 모르는 방자한 컴퓨터가 ‘불손’이란 단어를 인간에게 제공하지 않으려다 보니 찾을 수 없는가보다.
결국 어렵게 사전을 찾아보니‘공손하지 않다’고 나와있다. 즉 예의 바르고 겸손하지 않다는 뜻인데, 그러고 보면 ‘불손’이라는 단어는 신분사회에서 양반들이 만들어낸 ‘권위주의적 상징’이 아닐까?
최근 청소년수련관 건립을 위한 시민의 모임측 대표들이 의회를 방문했을 때 황 모라는 의원은 청소년수련관 건립을 유보한 의회에 항의성 발언을 한 시민모임측의 발언이 불손하다며 다시는 이런 자리를 만들지 말자고 의장에게 항의성 건의를 했다고 한다.
하긴 서천이 아무리 변방이라 하지만 고을 수장인 지체 높은 사또를 감시하는 의회의 의장까지 역임했던 분이니 일개 시민단체 몇몇쯤이야 얼마나 하찮게 보겠는가 이해는 갈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저를 뽑아 주시면 지역발전과 주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어쩌구 저쩌구∼’했던 사람이 당선 된 후에는 ‘주민을 아랫것 보듯’하고 있으니 참으로 분통 터질 일이다.
하긴 한 치 앞 못보고 뽑아준 우리네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으나 한편으로는 괘씸하고 분하여 ‘괘씸한 윗 것’이라고 퍼붓고 싶기도 하다.
더 생각해 보면 주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준 일꾼이 감히 주인에게 이런 막말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참으로 불손하다’며 곤장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일컫는 지방자치시대에서 주민의 대표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명예스럽고 자랑스런 일이다. 하지만 명예스럽고 자랑스런 자리는 그에 걸맞은 자세가 요구된다.
지방의회 의원이라는 직분은 당연히 봉사직이건만 행여 높은 지위에 올라섰다는 만용으로 그릇된 ‘권위주의’를 내세우거나 직위를 이용해 자신의 이권을 추구하려 한다면 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권위’와 ‘권위주의’가 엄격히 구분되듯 ‘불손’이 권위주의의 산물이라면 ‘겸손’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회적 도리’다.
지역의 대소사를 논하다 보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한 행위는 당연한 것이고 청소년수련관 건립을 위한 시민모임측의 항의도 이런 맥락에서 지역을 위한 공적인 일인만큼 존중되어져야 한다.
하인의 말에도 귀 기울이던 황희 정승의 겸손함을 갖춘‘겸손한 의원’, 그러면서도 ‘주민이 우러러 볼 수 있는 의원’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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