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시장인생 45년, 화금상회 조순희 여사
■ 인터뷰 / 시장인생 45년, 화금상회 조순희 여사
  • 이미선 기자
  • 승인 2011.01.08 03:37
  • 호수 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식들 우는 거 보믄 참, 밥이 안맥혀”

▲ 조순희 여사가 대추를 정리하고 있다.

무뎌진 세월만큼이나 굵어진 손가락과 옅어 희어진 머리카락.
오전 7시면 아침도시락과 오늘 먹을 두 끼 찬거리를 싸들고 새벽녘 공기가 다 가시지 않은 세상 밖 일터로 향한다.

▲ 조순희 여사.

올해로 여든하고도 꼬박 한해를 더 넘긴 화금상회 조순희(80·서천읍 화금1구)여사.
45년을 한 결 같이 서천행 버스에 몸을 싣는 그녀의 종착지는 시장이다.
친구와 함께 옛 서천시장(현 봄의 마을 터) 어물전을 시작했던 조씨는 막막하고 가슴 답답했던 그때의 흑색기억을 되짚고 있었다.

“자식들(5남 1녀) 고아 소리는 안 듣게 해야지.. 그 어린것들이 눈물 질질 흘리는걸 보믄 참, 목구멍에 밥이 안 맥혀(먹혀)”

당시 암으로 투병 중이던 남편 고 허 운씨의 병세가 악화되자 어떻게든 자식들을 착실히 키워낼 참으로 시작한 그녀의 시장인생은 이제 장성한 5남매의 어깨와, 함께 일을 시작한 동료의 빈자리마저도 공허하지 않게 하는 힘을 지녔다.

남편이 살았으면 올해로 여든셋이라며 얼음장처럼 차가워 고목나무 같은 손으로 핏기가 사라진 자신의 얼굴을 한번 훔친다.

“애들이 다 착혀. 암~ 착하고 말고, 아직도 서울에 있는 첫째 놈은 옛날 얘길 자주혀. 지애미가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먼 산에 소복이 내려 쌓인 눈을 바라보듯 조금 멍해진 그녀의 어투는 막내딸로 귀하게 컸던 시절, 당시엔 꿈도 못 꿨을 생선비린내를 참는 모습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그녀의 심장을 울렸다.
“갈쿠망(갈보: ‘남자들에게 몸을 파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인 듯) 빼곤 안 해본 거 없이 다해봤어”

퍽 잘나진 않았지만 자식들에게 만큼은 정말 진실한 어머니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녀는 천안까지 머릿짐을 이고 생선을 팔러갔던 얘기며, 지난해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내시경을 4번이나 받았다는 얘기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올해 신묘년을 맞는 각오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는데.

“자녀들 무사하고, 하는 일 잘되고 또 무엇보다 건강이 제일이여. 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건강이니께”

손님들이 하도 찾기에 금산에서 직접 구입해 판매하고 있다는 인삼 몇 뿌리를 흘깃 쳐다보며 말을 잇는 조씨는 사과의 향긋함과 귤의 싱그러움이 녹아든 차가운 시장에 그렇게 하나의 그림이 되고 있었다.

“기성상회하고 대구상회에서 물건(과일)을 받는디, 이왕이면 지역 상품 애용해 달라고 말하고 싶어. 꼭 우리집께 아니어도 좋으니께 서천사람이믄 서천물건 사주면 좋잖여”

부쩍 많아진 마트들에 치여 좁아터진 시장 골목이 한결 느슨해진 것 같다는 그녀의 점심치 콩나물국 냄비가 이제 막 끓어오르려는 한산한 겨울시장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