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평등과 역할 분담
남녀 평등과 역할 분담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1.09.30 14:38
  • 호수 5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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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가 지배했던 시절 정치적인 민주화 투쟁이 곳곳에서 가열차게 일어났다. 이를 어느 정도 달성한 요즈음 가장 큰 사회문제가 경제의 민주화이다. 이에 얽힌 갈등을 풀어내고자 하는 움직임이 도처에서 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상급식’ 문제일 것이다.


조선 초기 유교의 이념 아래 사회를 재편성했을 때 당시의 남녀의 경제적 평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문건이 ‘분재기(分財記)’이다. 분재기란 아들과 딸들에 재산을 어떻게 나누어 주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건국대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보물 477호, 율곡선생남매분재기. 이 분재기는 율곡선생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율곡의 남매들이 모여 재산을 분배한 문서로, 조선전기 대표적인 분재기다. 율곡의 남매는 재산분배를 어떻게 했을까? 묘를 돌보고 제사를 위한 몫으로 율곡의 큰 형에게 일부 재산을 배정하고, 나머지 재산은 모두가 똑같이 나눠가졌다. 특히, 토지는 수확량까지 고려했는데, 7남매의 셋째아들인 율곡 이이가 상속받은 재산은 논 14짐 8마지기, 밭은 19짐을, 노비 15명으로 다른 남매도 이와 유사하게 재산을 분배받았다. 이러한 재산 분배의 기준은 조선의 국가 법률인 경국대전의 규정을 따르고 있는데 철저하게 남녀가 즉 아들이나 딸이나 똑같이 분재· 상속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고 있다.


이처럼 철저한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남녀의 경제적 평등은 법으로 보장된 사실이었다. 유교가 여성을 비하했다거나 억압을 강요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다만 남녀간에 역할을 분담한 것이 차별로 비쳐졌을지 모르겠다.


지난 28일 한산향교에서 치른 석전제에서는 그동안의 전통을 허물고 여성들이 행사의 주역으로 참여하였다. 이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사회참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반면에 음과 양의 역할 분담을 강조하는 이들에게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각자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 맡은 분야가 있는데 이에 대한 가치의 경중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남녀간에 서로 보완해야 완전함에 이를진대 어느 편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된 생각이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석전제 행사에 여성이 참여했다는 사실로 여권이 신장됐다거나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남성우월주의를 승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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