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이 중요한 이유
인성교육이 중요한 이유
  • 뉴스서천
  • 승인 2003.03.06 00:00
  • 호수 1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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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을 보며

다시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을 보며, 나는 그 안타까움에 볼 적마다 며칠을 두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밤잠을 설치며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해방 이후 아니, 전후(戰後)의 우리나라는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이 지상목표였다. 또한 그에 따른 무한 경쟁의 개발지상주의가 우리의 현대사로 이어져 왔다. 고도성장이라는 이면에는 국가적 수치심을 유발한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건과 같은 대형 참사가 우리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아 왔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안전불감증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으로 나타난 피할 수 없는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은 천재도 인재도 아닌 인간의 자위적 행동이라는데, 국민적 수치심의 극치를 이룬다.
인간(人間)이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다시 말해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가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일까. 배움이 모자라서일까? 아니다. 요즘은 대개가 전문대학이라도 졸업하는 것이 보통인 세상이 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돌아보기만 하면 십자가 높이 서 있는 교회와 성당이며, 더욱 호화롭게만 키워 가는 사찰이 늘어만 가는 것이 요즈음의 세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적’이지를 못해서 그렇다고 본다. 여기에서 그 고리타분한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다시금 대두하게 된다. 어쩔 것인가. 기본은 바로 그 고리타분함에 있는데…….

7정을 통제할 수 있는 4덕의 수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천부(天賦)의 성(性)을 가지는데 이 성이 사물에 접하여 정(情)이 된다고 한다. 이른바 칠정(七情)인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 바로 그것인데,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감정으로 보았던 것이 고대 이후의 동양이다. 그리고 그것과의 관계를 그린 것이 후에 너무도 유명한 성리학에서 말하는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의 사단이요, 나아가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요약되는 4덕이다.
그렇다면 인간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의 실마리가 바로 칠정을 통제할 수 있는 크게 사덕을 실천 윤리로 삼아 몸을 닦는 일인데, 그것이 인간성을 온전히 회복·유지케 한다는 것이다. 쉽게 풀어보면 첫째가 사람에게는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인(仁)’의 단서이고, 둘째가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의(義)’의 단서이고, 셋째는 사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예(禮)’의 단서이고, 넷째는 옳고 그름을 분간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지(智)’의 단서라 했으니, 사람에게는 원천적으로 ‘인의예지’의 실마리가 내재해 있다고 본 것이다. 4덕은 맹자가 주장한 학설로, 그의 성선설(性善說)은 여기에서 부연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것을 잃는다는 것은 바로 인간성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잊고 있으며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 본 글을 쓰는 이유다. 우리는 2세들을 무엇보다도그러한성품(person -ality)에 충실한 인간으로 길러야 한다. 그것이 사회 문제의 여러 가지들을 예방·치유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또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그런 사건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책임감도 없지 않다. 물론 범죄를 저지른 본인은 그 죄를 어떻게 다 받을 것이며, 세계는 우리나라 국민의 인간적 수준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죽으려면 혼자 고이 죽을 일이지, 그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또한 무엇인가. 그 죽어 가는 사람들의 최후의 통화는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다시금 목이 메이게 한다. 그런데 그 범인은 지체부자유자요 우리 사회에서 소외돼 우울증을 앓고 있던 자라고 한다. 요즘 뉴스에 보면 심심찮게 인터넷에 함께 죽자는 자살 사이트가 등장하고, “혼자 죽기는 억울해 많은 사람과 함께 죽고 싶어서”가 그 범인의 변이라니, 불특정다수를 향한 화풀이의 복수심에 가슴이 떨린다. 이 사회는 과연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인간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울 때

요즘에 들어 교육계에서도 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잘한 일이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본다. 인간이 잘못되면 한 사회 자체를 송두리째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다.
시스템 자체를 탓하기 이전에 원인은 사고를 낸 사람의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시스템 자체가 잘 돼 있다고 해도 사고를 저지르겠다는 사람을 따라다니며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달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해도 사람답지 못하면 히틀러와 같은 자를 탄생시킬 수가 있다. 우리 부모 된 사람들은, 나아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교사들은 우선 인간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아가 인간의 어버이로서 자식을 우선 인간으로 만드는데 결코 소홀함이 있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아니, 보다 멀리 내다보는 인간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울 때다.
<윤병화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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