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결연 부결’을 환영한다
‘자매결연 부결’을 환영한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3.07.01 15:54
  • 호수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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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970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은퇴한 일본인 건축설계사 우에쓰카 하쿠유는 후쿠오카현 다가와시 근처 히코산 기슭의 자신 소유 밭을 갈다가 한 묘비를 발견한다. 그 비석에는 임진왜란 때 이름을 떨친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런 명성에 걸맞지 않았다. 진주성 싸움의 승리를 기념하는 잔치에서 술을 마시다 조선의 여인 ‘논개’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우에쓰카는 그런 게야무라의 비극적 죽음을 흠모했다. 그래서 그의 ‘부끄럽고도 억울한’ 죽음을 풀어줄 묘안을 생각해 냈다. 바로 그를 죽음으로 이끈 조선 여인의 영혼을 함께 모시는 것이었다. 그는 73년 한국의 진주에 처음 찾아와 그런 뜻을 전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러자 그는 새로운 명분을 내세웠다. 논개와 게야무라의 영혼을 함께 모시는 일이 한-일간의 역사적 화해와 교류, 영혼들의 원풀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주장으로 그는 진주시와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진주에서 논개와 게야무라의 넋을 건져 이를 일본으로 모셔가는 의식을 치렀다.  나아가 그는 히코산에 게야무라와 함께 논개의 무덤을 만드는 작업을 벌였다. 그는 논개가 순국한 진주시에서 모래와 나무, 흙, 논개의 고향 장수에서 돌을 가져다 게야무라의 무덤 옆에 논개 무덤을 꾸몄다. 또 진주 촉석루 옆 ‘의기사’에 걸린 논개 영정과 똑같은 영정을 만들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그뒤 논개의 영정은 마치 게야무라의 첩이라도 되는 양 그의 아내, 처제와 나란히 놓이게 됐다. 이에 따라 “전쟁중에 게야무라를 만난 논개가 전쟁이 끝난 뒤 게야무라를 따라 일본에 건너와 함께 해로하다 죽었다”는 사실과 정반대의 이야기까지 생겨났다. 심지어 논개는 이곳을 찾는 일본인들에게 “부부관계를 좋게 만들고 아기를 점지해주는 신”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6년 게야무라와 논개를 모신 사당인 ‘보수원’ 준공식 겸 합동진혼식 때는 우에쓰카를 도운 진주 유지들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당시 진주 시장이 우에쓰카에게 감사장까지 줬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논개와 게야무라의 영혼과 영정, 무덤을 함께 모신 일은 ‘한-일간의 역사적 화해와 교류’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본쪽의 ‘방자한’ 행위는 논개의 숭고한 뜻을 훼손하면서 그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어나 진주시가 격랑에 휩싸인 바 있다. 정치인들의 무지한 행동이 조상 앞에 머리를 들 수 없게 한 사건이었다.


지난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저자세를 틈타 우리를 수시로 자극해왔다. 이로써 지금의 일본은 1970년대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기에 지난달 28일 군의회는 본회의에서 오사키시와의 자매결연 협정체결 동의(안)을 부결시켰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로 우리는 이를 환영한다.


체르노빌의 11배 규모라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건으로 현재 미야기현은 신음하고 있다. 어떤 재앙이 나타날지 공포에 휩싸인 지역이다. 앞으로도 군의원들은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여 정략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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