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두 가지 실책
노 대통령의 두 가지 실책
  • 뉴스서천
  • 승인 2003.04.18 00:00
  • 호수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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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우리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았다. 국회의원 선거에서조차 낙선하던 ‘바보 노무현’이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개혁적 열망이 안개 속 같던 대선 흐름을 일거에 바꿔 놓은 것으로, 참여정부의 탄생은 양심과 도덕의 승리였다.
문제가 생겼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채 한 달을 못 넘기고 중차대한 두 가지 실책을 거듭하고 말았다. 차대한 하나는 대북 송금이라는 DJ 비리를 대충 마무리하려 한 일이고, 중대한 하나는 이라크전 파병 문제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일은 국익을 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은, 국익을 스스로 포기한 실책이다. 단언하건대 노 대통령이 앞으로 오년간 쌓아 올리게 될 치적에 상관없이 훗날 업보처럼 따라 다닐 오점이리라.
혹자는 DJ가 이끌던 국민의 정부를 실수투성이 정권, 치적 없는 정부였다라고도 말한다. 허나 잘한 부분도 있다. 그 중에서 자주 외교정책은 단연 돋보인다. 프랑스, 독일과 함께 Axis of Independence라고, 전세계 외교가가 숨을 죽이고 주목하기도 했었다. 그럴만한 것이 역대 정권과 차별화된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외교를 펼쳤던 것이다.
대선 기간 내내 “잘된 것은 물려받을 것이다.”라고 외치던 노 후보였다. 따라서 자주 외교정책은 당연히 계승할 것으로 믿었다. 그럴 것이 3당 야합에 반대해 YS와 결별한 이후 그가 걸어온 고난의 길이를 이를 보증했다. 하지만 믿음과 기대는 무너졌다.
첫 번째 실책을 살펴보자. 냉전 시대가 끝난 지금 북한이 우리의 형제라는 것에 이견을 달리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아사 직전의 북쪽 형제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을 지원을 하는 등 감히 상상도 못했던 ‘햇볕 정책’에 어떤 거부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은 휴전 이후 반세기 동안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고 있는 적대국이다. 그렇듯 24시간 눈을 부라려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액의 현금이 통수권자의 의지에 따라 암암리에 북으로 흘러갔다. 이는 곧 적에게 무기를 가져다 바친 꼴로 대역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감히 DJ 비리를 파헤치고 떨쳐 냈어야 옳았다.
두 번째 실책은 이라크전 파병이다. 유엔헌장 51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국가가 유엔 안보리의 사전 승인이나 적절한 지역 기구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자위(自衛)의 경우에 한해 무력 사용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전에서부터 아프칸전에 이르기까지 착실히 51조를 이행하던 미국이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다. 이른바 전쟁 예방전쟁. 석유를 노린 탐욕의 이권전쟁. 한 주권국가의 정권은 자국민만이 바꿀 수 있는데도 이라크 정권을 전복한 부도덕한 내정간섭. 아직도 발견되고 있지 않은 대량살상 무기 파괴를 내세워 일으킨 전쟁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더러운 전쟁인 것이다.
이번 전쟁은 세계 질서를 바꿔 놓았다. 그 동안 국제 평화를 유지해 주던 유엔의 위상은 추락하고, 수 틀린 강대국이 먼저 치면 그만인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너도나도 적국을 선제 공격을 하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늘 전운이 감도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전쟁은 어떻게 막을 것이며, 미국이 이라크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껄끄러운 시리아를 치고 북한의 핵 시설에 선제 공격을 하려 할 때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개전 20 일만의 바그다드 함락이라는 화려한 전과 뒤엔 새로운 갈등이 잔뜩 옹크리고 있는 것이다.
집단으로 항명하던 검사들과 여론을 수렴한다며 텔레비전에 나와 얼굴을 붉히던 노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침략국을 돕기 위한 국군의 해외 파병이라는 중대한 결정은 당연히 국민투표에 부치던지, 아니면 후보 단일화 때 채택했던 것처럼 최소한 여론조사라도 하는 등 모양새를 갖춰야 했어야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직접 국회에 나와 파병안 찬성을 호소했다. 그것도 파병에 명분 없음을 시인하면서 굴욕적으로.
미국은 시쳇말로 ‘왕따’ 국가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보편성 없는 지지에 이미 중동 국가들이 등을 돌린지 오래이다.
군사정책을 나토(NATO)에, 유럽 연합에 금융정책을 위임한 유럽 국가들도 이번 전쟁으로 미국과 공조하기를 꺼려할 것이다. 제기를 노리는 러시아. 세계 제패를 꿈꾸는 중국. 생존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전 세계는 승전국 미국에게 미소를 던지고 있다. 미국은 10여 년 간 이어지는 경제 불황으로 이미 국운의 절정기를 넘어 서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일본을 비롯한 경제대국 몇 개국이 등을 돌리면 곧바로 붕괴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미소는 조소이며, 그 속내는 뻔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미국에 당당히 “NO”라고 말할 것이라던 노 대통령은, 부시로부터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인간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 양심을 팔고, 국익보다 우선 되야할 인권을 무시해 버렸다.
어쨌든 노 대통령은 첫 단추를 잘못 뀄다. 첫 번째 실책에 당혹해 하는 사이 두 번째 실책으로 이어졌고, 이로써 동방의 작은 나라는 세계사에 전범 국가로 남게 되었다.
<구경욱/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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