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부동(和而不同)
화이부동(和而不同)
  • 뉴스서천
  • 승인 2003.04.25 00:00
  • 호수 1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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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잔인한 달」. 매년 이맘때면 한 두 번쯤은 듣는 말이다. 그것은 새로운 생명을 낳지 못하는 주위현상을 영국시인(T. S 엘리엇)이 표현한 메시지다. 따라서 이는 반드시 지켜지는 자연의 존재법칙에 비해 재생과 부활조차도 가지지 못하는 자기 파멸적인 인간의 욕망을 빗대고 있다는 그럴싸한 해설들과 늘 함께 하고 있다.
봄의 따사로움을 여유 삼아 주위를 살펴본다. 특히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다보니 캠퍼스의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고학력 중심형 추종자들에 맞서 능력중심형 교육의 필요성을 외쳐대고 다녔던 입시 철을 지내고 이제는 풋풋한 새내기들을 만나서 두어달 가량을 함께 생활하고 있는 시점에서 말이다. 그런데 처음 입학당시의 모습과는 달리 벚꽃의 피고 짐을 신호로 무엇인가 변화하는 것들이 감지된다. 정확히 한 달여 만에 비쳐진 첫 번째 변화이다. 하나는 처음의 의지대로 자존(自尊)을 위한 꿋꿋한 뿌리내림이요, 다른 하나는 익숙해진 환경에 대한 고질적인 응석받이형 배타(排他)로 이어지는 모습들이다. 문제는 후자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요, 이는 학생만이 아니라 많은 선생들로부터도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내가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들이 지금도 버젓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크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반 아이들 대부분은 대통령과 장군, 미스 코리아였고 택시운전사라고 대답했던 왠지 어색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도 난 결코 장래희망에 대한 그 어떠한 교육과 설명을 학교에서 받지 못한 채, 무조건 상위권 대학이라는 어른들의 확률공식에 쉽게 휩쓸려 가야만 했다.
그렇다. 처음의 시작단계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설레임,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으로 모두들 멋지게 시작한다. 지금의 나도 학생들과 그렇게 하고 있다. 책임감 높은 중견 전문인을 목표 삼아 산 날보다는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기에 지금부터라도 힘차게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말이다. 구성원 모두가 상당히 동참하는 분위기였다. 아니 어찌 보면 선생들이 먼저 꺼내 놓았던 주창이었으니 모두가 쉽게 새로워지고자 한다.
하지만 선생들 역시도 막연한 기대로부터의 실망감을 시작으로 여전히 입으로만 외쳐지고 있는 꽉 막힌 현실들, 그래서 유혹 받는 반복되는 익숙함, 하나의 직업인으로만 평가받아야 하는 소외감으로써 점차 그들만의 의욕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들조차도 인생역전의 대박을 노리며 남 모르게 복권을 사고 있지는 않은지? 단지 보기 좋은 신분적 위치만을 무기 삼아 하루하루를 때우고 있지는 않은지?
어찌 이 같은 현실이 선생님들만의 현실이랴! 정치계나 종교계 등을 비롯해 지식인들이라 자칭하는 분야라면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띤다. 그래서 일찍이 4월이 잔인하다고 표현된 것일까? 지성의 단락(短絡)을 통한 인간존재의 불안한 상황을 말이다. 점차 진정한 어른들은 없어지고 심히 신분상승에만 주력하는 그래서 늘 피곤하고 불안한 기성세대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후학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인가?
반칙문화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지식인으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현실이라면 상대적인 박탈감은 무시한다 하더라도 향후 세대에서 치러내야 하는 보다 치열한 경쟁에 대비, 긴장하고 초조해야함이 옳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생역전의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니 그 때만을 기다리라고 해야하는지 어리둥절한 입장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 우연한 답을 생각해 보았다.「小人同而不和요, 大人和而不同이라」이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공자(孔子)의 말들을 기록한 논어(論語)에 나오는 구절이다. ‘군자는 남과 화합하되 뇌동(雷同) 하지 않으며 소인은 뇌동 하되 화합하지는 못한다.’라는 뜻이다. 즉, 이제는 끼리끼리의 소인배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 비록 생각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지혜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나에게 주어진 능력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남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당당히 갚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분업(分業)에 대한 실천모습을 남다르게 가져보아야 하겠다.
분명히 병졸보다 장군이 더 많은 군대는 전쟁에서 지는 법이며 ‘덕장과 용장’이라는 말은 있어도 ‘졸장과 완장’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장인식/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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