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 걸음아 날 살려라
[모시장터] 걸음아 날 살려라
  • 양선숙 칼럼위원
  • 승인 2014.10.14 15:41
  • 호수 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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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에 내가 사는 곳에 수해가 나서 타던 자동차가 물에 잠겨 폐차를 했다. 새로 자동차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그러지 못하고 그 때부터 뚜벅이가 되어 걸어 다녔다. 내 직업은 사람 만나는 일로 이동이 잦다. 몸이 불편한 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해소되었지만 차 없이 다녀야한다는 마음의 짐은 여전히 나를 무겁게 했다.

아파트 평수와 어떤 자동차를 타느냐에 따라 사람살이의 수준을 결정하는 한국문화에서 십여 년 자가운전을 하다 걸어 다니는 나를 보며 어찌 생각할까 싶어 큰 길을 멀리하고 골목으로 다니고 기본요금 거리도 택시를 타며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감추곤 했다.

한참을 그렇게 지내던 중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자가용을 어찌했는지 모르지만)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매일매일 SNS에 올리는 모습에서 ‘자유’를 보았다. 반면, 존재하지 않는 시선과 보이지 않는 편견에 묶여있는 내 자신도 보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나의 행보(行步)에 관심이 없는데 나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걸어 다니는 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묶여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큰 깨달음이 왔다.

나는 지금도 걸어 다닌다. 생각을 바꾸니 행복이 내 마음에 있다. 요즘처럼 계절의 변화로 자연이 충만할 때는 가을 햇살과 바람을 맞으러 발길을 재촉한다. 텃밭에서 자란 고추가 태양초가 되기 위해 일광욕에 너부러져 있고, 코스모스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에 내 마음도 따라 보내고, 높디높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 작고 작은 내 모습에 겸손해진다. 오랫동안 공터였던 자리에 건물이 지어져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손 붙잡고 아장거리는 아가의 서툰 발걸음도 본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걷는 일로 인해 그 동안 놓치고 살았던 사람살이의 흔적과 자연의 충만함이 고스란히 내 속에 담겨진다.

몇 걸음만 걸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여름과 서해바다의 매서운 칼바람의 겨울을 두 해나 넘기며 걷다보니 몸도 조금씩 건강해졌다. 체중은 그대로인데 살 빠지고 예뻐졌다는 인사도 많이 듣고, 대장질환의 질병도 어려움이 없으니 일거양득이다.

하는 일이 토요일에 바빠서 짬이 나지 않지만 나의 작은 소망은 토요일마다 서천군의 마을길을 찾아 길 떠나는 ‘걸음아 나 살려라’라는 걷기 모임에 동참하는 일이다. 몸이 있는 곳에 마음도 간다. 서천인의 삶이 녹아있는 마을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다보면 서천에 대한 애향심도 쌓여갈 것 같다. 나 한 사람의 걸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이 걸음을 모아 걷는다면 사람 살만한 서천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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