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간디’를 생각한다
다시 ‘간디’를 생각한다
  • 뉴스서천
  • 승인 2003.05.02 00:00
  • 호수 1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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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가치나 뜻을 인정하는가에 관한 각자의 관점을 가치관(價値觀)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런 개개의 다양한 가치들이 모여 조화로운 세상을 이룬다.
미국 초창기 독립 운동의 지도자였던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라고 했다. 그것은 그에 있어 자유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가치로운 것이었다. 또한 몇 년 전에 죽은 마더 테레사 수녀는 죽는 날까지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를 하다가 생을 마쳤다. 그의 삶의 가치는 바로 봉사였다. 뿐만 아니라, 그를 인정해 노벨평화상을 내린 그 노벨상위원회 역시 그에 대한 가치 평가였다. 이렇듯 가치는 지고(至高)한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삶에 힘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거의 모든 가치 기준이 경제적인 측면으로 일원화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나아가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세계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흘러가다 보니 그렇기는 하겠다. 그러니 돈이면 통하고 돈이면 사람의 마음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아니, 국제 간의 전쟁까지도 이념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을 염두에 두고 명분 없는 전쟁까지 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나는 이에 이르러 다시 마하트마 간디를 생각해 본다. 간디는 일찍이 자신이 관여했던 주간지 《Young India―젊은 인도》에서, 세상에서 가치 없는 일 일곱 가지를 규정한 바 있다. 그것을 들어보면, ①원칙 없는 정치 ②도덕 없는 상업 ③노동 없는 부 ④인격 없는 교육 ⑤인간성 없는 과학 ⑥희생 없는 신앙 ⑦양심 없는 쾌락이 바로 그것이다.
부연하면 정치를 함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나 두루 적용되는 근본이 되는 법칙에 따라야 하며, 장사를 함에 있어서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따라야 하며, 돈을 모음에 있어서는 불로소득이 아닌 정당한 노동의 대가이어야 하며, 교육을 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의 품격을 지켜는 것이 중요하며, 과학을 함에 있어서는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하는 것이어야 하며, 신앙을 함에 있어서는 자기 몸을 먼저 돌보아서는 아니 되며, 쾌락을 맛봄에 있어서는 그것의 옳고 그름과 선악의 판단 속에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니 그런 것이 전제되지 않은 것은 가치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 가치란 목적에 앞서 늘 과정에 우선한다.
아무튼 우리가 교육을 함에 있어서 이것만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있어서의 올바른 가치관의 설정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 자신의 먼 인생을 가치롭게 사느냐 살지 못하느냐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또한 말할지도 모른다. 조화롭고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어갈 다양한 가치관의 세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요원하기만 한 꿈이라고.
그러나 문제는 전체의 합을 생각하기 이전에 언제나 부분인 나 개인의 확실한 실천이 중요하다. 내가 하고 너가 하고 그 모두가 합쳐지면 전체는 자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내가 종사하는 부분에서 내 자신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나, 내 자식들은 그저 돈이나 많이 벌어 잘 살았으면 하는 단순한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나 우리 한번 뒤돌아볼 일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북핵 문제, 경제 불안, 로또 복권, 서교장 자살 사건 등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이때에, 우리 모두 다시 한번 간디의 말을 생각해 볼 일이다.

<윤병화/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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