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되는 정치, 독이 되는 정치
밥이 되는 정치, 독이 되는 정치
  • 심재옥 칼럼위원
  • 승인 2015.04.13 14:45
  • 호수 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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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옥 칼럼위원
최근 또 다시 무상급식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무상급식 논란을 보면서, 한 때 서울시학교급식조례제정 운동을 했던 나로서는 마음이 착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언제까지 아이들의 밥 문제로 이렇게 매번 논쟁을 벌여야 하는지, 학교에서 밥을 먹으려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만 하는 이런 잔인한 조치가 언제까지 옳다 그르다 논쟁해야 되는지 한심하고 심란할 뿐이다. 

이번에는 경상남도가 4월 1일자로 관내 초중학교에 무상으로 제공하던 학교급식을 전면 중단하면서 시작되었는데, 마치 2011년 서울시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이 포함된 학교급식조례의 시행을 거부하면서 벌였던 때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 오세훈 시장도 무상급식은 부자의 자녀들에게까지 꽁짜 밥을 주는 ‘부자급식’이라며 서울시가 그런 예산까지 부담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문제만큼은 차별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교육이라는 학부모들의 요구는 묵살되었고 오세훈 시장에 의해 학교급식조례는 주민투표에 부쳐졌다.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논쟁을 벌였던 2011년 서울시의 급식논쟁은 결국 주민투표의 실패와 오세훈 시장의 중도사퇴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당시에도 무상급식 논쟁은, 학교급식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따져보기 보다는 부자와 가난을 가르는 기준이 먼저 얘기되었고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예산문제가 먼저 거론되었다. 아이들의 밥 문제를 정치 논쟁의 소재로 삼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끄럽고 면목 없는 일인지, 우리사회의 복지가 어떤 방식으로 확대되는 것이 좋은지, 2011년 서울시 학교급식 사태는 제대로 교훈을 남기지 못한 모양이다. 그 때 그 사건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좀 빠른 속단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경상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사태는 결국 홍준표 도지사의 정치적 패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아무리 도지사의 뜻이 높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민들 대다수의 뜻과 달라 갈등을 일으키는 방식이라면 이미 정치인으로서 실패한 것이다. 더욱이 그 정치 쟁점의 소재가 아이들의 밥 문제이다. 가난한 아이들을 골라내서 가난을 증명하면 밥을 주겠다는, 이런 비교육적이고 반인권적인 발상을 지지할 주민들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홍준표 도지사가 명분으로 삼고 있는 도의 재정부족이라는 명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상남도의 재정자립도는 41.95%로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에서 10위 정도이다. 재정자립도가 20%대에 불과한 강원도의 무상급식 비율은 92.6%, 전북은 94.4%에 달하고 있다.

연 경상남도가 아이들의 밥그릇까지 건드려야 할 정도로 재정위기인지, 도는 아직 답변을 못하고 있다.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의 논쟁 속에서 보편복지의 확대가 망국병이 될 것이라는 홍준표 도지사의 소신을 백번 인정한다하더라도, 이렇게 아이들의 밥그릇을 일거에 엎어버리는 방식이어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경남도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복지를 퇴행시키는 데 쓰는 것도 놀랍지만, 항의하는 학부모들에게 “학교는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고 윽박지르고 ‘종북좌파’, ‘반사회적 정치집단’으로 매도하며 주민들과 전쟁이라도 한 판 벌이겠다는 태도는 정말 놀랍다.   학교급식 무상논쟁으로 더 이상 갈등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사회의 복지기반이 아무리 취약하더라도 이렇게 틈만 나면 학생들의 급식을 문제 삼으며 복지논쟁을 벌이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밥은 하늘이라고 배웠다. 유독 배곯고 가난했던 기억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 끼니 때마다 ‘식사하셨냐’고 안부를 묻는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의 밥에 얽힌 슬픈 추억은 영혼 깊숙이 새겨져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밥은 그냥, 무조건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책임져야할 어른들의 의무이다. 학교에서 밥을 먹는 아이의 부모가 부자면 어떻고 가난하면 어떤가. 밥을 주면서 가난의 낙인을 찍고 차별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그건 이미 밥이 아니라 독이다. 밥이 되는 정치는 못할망정 독이 되는 정치를 펴고 있다면 그건 국민들이 선택할 일이다. 계속 당하고 있을 것인지 조속히 끝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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