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에도 슬픈 비정규직
메르스 사태에도 슬픈 비정규직
  • 심재옥 칼럼위원
  • 승인 2015.06.29 21:16
  • 호수 7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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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옥 칼럼위원
 메르스라는 이름의 생소한 전염병으로 온 나라가 떨고 있다. 최초의 확진환자가 발생한 날로부터 한 달도 더 지났다. 6월 23일에는 4명의 확진환자가 추가로 발생해 환자가 179명까지 늘어 난데다가 이전 환자들처럼 병원 응급실이나 확진환자와의 접촉도 아닌, 감염경로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처음으로 포함되어 있다. 여전히 격리자는 3000여명이 넘고 여전히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다. 기세를 떨치는 메르스의 확산세와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지켜보고 있자니 도무지 이게 의료선진국을 자처했던 대한민국의 현실인지 믿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형병원이라는 삼성서울병원은 ‘수익위주의 운영구조’와 ‘경영진의 자만’으로 40여명의 환자를 만들었고 정부의 안일한 초기대응은 메르스 사태를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까지 비화시켰다.

메르스의 습격으로 평온하던 일상은 파괴되고 있다. 서울 거리엔 사람도 차도 줄어들었다. 지하철, 버스에서는 잔기침 하나에도 화들짝 놀라 서로 눈치를 보게 되었다. 웬만하면 쇼핑도 외식도 하지 않는다. 이집 저집 놀러 다니던 아이들은 집에 붙들려 있느라 죽을 지경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과도 악수를 꺼리게 되었다.

이제는 지역사회 감염과 가족 감염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친밀한 관계와 익숙한 일상마저 파괴되고 있는 느낌이다.  언제, 어디, 누군가로부터 바이러스를 전달받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바로 그 전염병의 전파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공포스럽다. 정부도, 병원도 믿을 수 없고 누구도,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두렵다. 전염병이라는 게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발생될 수 있고 전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게 우연에 기댈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그런데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상황 속에서 정말 경악스러운 사실이 드러났다. 초반부터 안일한 대응으로 메르스 대량 확산사태를 불러온 삼성서울병원이 병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관리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아 추가 환자를 발생시켰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환자는 응급실에서 환자를 이송하는 업무를 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인데, 열이 나고 메르스 증상을 보인 이후에도 격리되지 않고 8일 동안이나 환자 이송업무를 계속했다고 한다. 의사가 확진 판정을 받고, 이후 40여명이 넘는 메르스 확진자가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되었음이 밝혀진 이후에도 병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안전관리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응급실 환자 이송업무가 용역/하청 업무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병원이 직접관리 하는 인력이 아니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기가 막힌다. 어디 메르스가 사람보고 선택적으로 들어 앉던가. 비정규직이라고 메르스에서 비켜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비정규직이라고 관리할 생각조차 안하고 비정규직이라고 메르스 증상이 보이는 사람을 격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가 찰 일이다. 이들 비정규직은 누구인가?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응급실 이송요원, 간병인들과 청소노동자, 식당 노동자들처럼 환자의 병원생활과 치료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비단 삼성서울병원에만 있는 것이 아닌 듯 싶다. 울산대병원도 직원들을 상대로 매일 체온을 재고 마스크나 보호구를 지급하고 있지만 정작 90여명에 달하는 청소노동자들에게는 체온 측정도 하지 않고 마스크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산에서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도 대전 대청병원에 파견나갔던 전산 노동자였는데, 이후 그 병원을 거쳐간 사람들을 추적관리하는 과정에서 이 분이 외주/파견 노동자라고 명단에서 누락되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쯤되면 전국의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 모두 비정규직에 대한 전수조사와 안전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은 사람이 아닌가? 비정규직은 있어도 없는 유령이거나 로봇인가? 사람들은 비정규직을 차별하지만 바이러스는 비정규직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 슬프게도 바이러스의 이런 무차별성은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모두를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신분과 지위고하도 가리지 않는다. ‘사람’ 보다 ‘비용절감’만 생각하는 자본 중심의 사회구조가 안전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돈 보다 생명’이라는 이 당연한 상식이 왜 이렇게 멀기만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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