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시의 힘
어린이시의 힘
  • 김환영 칼럼위원
  • 승인 2015.07.25 13:49
  • 호수 77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쟁이인 내가 동시를 쓰게 된 것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 격이라 할 만하다.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게 되고도 한참 뒤에야 비로소 어린이문학을 만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내 삶과 어린 시절을 통렬하게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계에 대한 억압과 고립감으로 힘들어 하던 때 어린이문학은 내게 커다란 위안이었다. 나는 그 세계가 좋았고, 그 안에는 오랫동안 잊고 살던 맑고 분명하며, 단순하되 자유분방한 세계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게 그것은 희망이자 구원이었다. 더구나 그런 장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어린이시’에 대한 놀라움은 그야말로 덤이었다. 밥벌이이기도 했지만, 나는 어린이 책들을 뼈 빠지게 읽게 되었고, 그 가운데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쳤던 아이들의 시 묶음인 ‘일하는 아이들’은 일대 충격이었다. 

 어린이시집 가운데 나와 인연이 닿았던 임길택 선생님의 아이들 문집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학급문집의 제목은 본디 ‘나도 광부가 되겠지’였다.)는 아픔을 동반한 눈물겨운 희망이었다. 이 책은, 세간에 사북사태로 알려진 사북지역에서 당시의 어린이들 글을 묶은 책으로 지도교사였던 임길택의 머리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앞서 우리 아버지들은 크게 노했고, 건물이 불탔으며 더러 다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교실은 문을 닫지 않았고, 아이들은 두 눈을 멀뚱거리며 학교에 나오곤 했다. (…) 특별히 ‘글짓기’를 모르는 아이들이었지만 그 아이들이 지금 살고 있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글로 쓸 수는 있었고, 나는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오후 내 책상에 앉아 그 글들을 읽었다. 그리고 더러 가슴 미어짐을 어쩔 수 없어 그 글을 읽다 말고 창가로 가면, 아직도 좁은 운동장엔 가방을 놔두고 뛰고 달리며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조금씩 그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비로소, 아이들 편에 서는 ‘선생님’이 되어 갔다. 매가 멀어져 갔고 게으름이 피어오를 때마다 무엇엔가 섬찟 놀라 돌아섰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형편없는 글씨로 아이들은 날마다 나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내게도 이 아이들은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형편없는 글씨로 나를 가르치’고 있었고, 나는 이들 시를 통하여 본디의 마음자리를 다시금 불러낼 수 있었다. 얽히고설켜 있는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들 시 가운데 몇 편을 꺼내어 다시 읽어본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광부로서 탄을 캐신다./나도 공부를 못하니 광부가 되겠지/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난 이제 광부가 되었으니/열심히 일해야 되겠지만/너는 커서 농부나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죽어도 광부는 되지 말라고 하신다.(나도 광부가 되겠지,  6학년 최우홍)

아버지가/집에 오실 때는/쓰껌헌 탄가루로/화장을 하고 오신다./그러면 우리는 장난말로/아버지 얼굴 예쁘네요./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이/그럼 예쁘다말다./우리는 그런 말을 듣고/한바탕 웃는다.(아버지가 오실 때, 5학년 하대원)

어머니와 아버지께서/싸웠다./아버지는 기분이 나빴는지/일은 안 갔다./내까지 울었다./우리 집에는/행복이란 것은/생각도 못 한다./눈앞에 두고도/못 이루는지 모르겠다.(싸움, 5학년 김명희)

 이제는 폐광이 되어 거의 사라져버렸지만, 광부라는 직업을 살짝 다른 말로 바꾸어 읽는다면 여전히 이 땅의 다수의 삶과 생생하게 겹쳐서 다가오지 않는가. 더구나 저 맑은 빛깔로 반짝거리는 어린 마음들이 우리네 단단한 마음들을 안타깝게 풀어헤치지 않는가.

30여 년 전에 가난 속에서 쓰여진 어린이들의 시를 다시 읽으며, 두어 달 전에 ‘잔혹동시’네 뭐네 하며 언론에서 시끄러웠던 시 한편을 떠올려 본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시의 주된 내용은 제목대로 학원가기 싫은 마음을 매우 엽기적으로 엄마에게 투사한 시였다. 나는 이 시의 전말이 궁금해 이 시가 들어있다는 시집을 애써 찾아 읽어보았다. 

 문제의 시집의 저자인 어린이는 시를 잘 쓸 뿐 아니라 충분히 시를 즐길 줄 알았고, 솔직하고 과감했다.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써내려가고 있었다. 시는 또한 ‘말놀이’이기도 해서, 랩 음악을 즐기듯 리듬과 운율과 라임의 사용이 두드러져 보였다. 또래들에게 유행하고 있을 호러나 판타지 따위의 특징도 보이지만, 그게 그리 크게 문제 삼을 만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 역시 어른이므로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나, 시집을 낸 어린이의 말대로 ‘시는 시일 뿐’이며, 이 땅의 어르신들처럼 ‘개그’를 ‘다큐’로 읽어버리면 진짜 소가 웃을 일이 되고 만다. 더구나 시의 세계라는 것이 생각만큼 명료하게 단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지 않던가. 아이들은 어른이 믿어주는 바로 꼭 그만큼 성장하며 나는 어린이들이 어른들만 못하다거나 생각이 부족하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숙제처럼 내게도 남는다. 사춘기라 그렇겠지만 오직 자기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는 이 시집은, 엄마와 나를 중심으로 한 핵가족의 풍경만을 그려낼 뿐, 친지나 친구, 가깝고 먼 이웃들의 삶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이 점이야말로, 저 30여 년 전 가난 속에서 쓰여진 시들과 상당한 차이점으로 다가온다!) 또한 출판사의 의도였는지 화가의 것이었는지는 모르나, 그림들이 너무나 직접적이고 일차원적이라 시를 한정하고 결정해 버리는 흠결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럼에도, 자신의 시를 이해 받을 수 있는 이 아이의 집안 환경이 나로서는 부러웠다. 세간의 오해와 달리 시인인 어머니와 변호사 아버지를 둔 여유롭고 화목한 가정에서 아이는 안정적으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땅의 아이들 모두가 그 정도의 환경에서 자유롭게 꿈을 펼치며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여덟 살의 꿈/1학년 박채연

나는 OO초등학교를 나와서/국제중학교를 나와서/민사고를 나와서/하버드대를 갈 거다./그래 그래서 나는/내가 하고 싶은/정말 하고 싶은/미용사가 될 거다. 

 최근에 노래로도 불리고 있는(인터넷 주소창에 제목을 치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 시를 마지막으로 읽는다. 시를 읽으며, 이제 갓 1학년이 된 계집 아이의 긍정적인 기운에 웃음이 일기도 하지만, 이내 뒷골이 서늘해지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이 어린이는, 이 사회의 어른들이 강요하는 저 모든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미용사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위안해 본다.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은 “시를 쓰는 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했다. 살인적인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다름 아닌 시를 쓰고 있는 어린이들이 이 땅에는 여전히 살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니라, 문제는 언제나 어른에게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