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선거를 보고
어린이선거를 보고
  • 박노찬
  • 승인 2002.03.21 00:00
  • 호수 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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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역 내 초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을 뽑는 선거가 한창이다. 학교마다 어린이들이 피켓을 들고 후보지지를 외치거나 학교는 물론 아이들이 잘 가는 문구점과 제과점 등에는 각종 공약이 적힌 포스터가 붙어있다.
어린이들의 선거는 비록 나이가 어리고 작은 조직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을 이끌어줄 대표를 뽑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배우는 좋은 경험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후보자들의 공약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과연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후보인지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을 통해 참다운 주권의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의 선거운동을 보면 학부모들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대리전이라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심지어 후보로 나선 아이들의 경우 선심성 내지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는가 하면 선물살포까지 횡횡한다는 소식은 어른들의 부끄러운 선거문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만 하다.
실제로 최근 서천 모 초등학교에서는 선거가 과열되자 선거일을 변경하는가 하면 학부모로 보이는 네티즌이 서천교육청 홈페이지에 상대방에 대한 비방내용이 게재되는 등 갖가지 웃지못할 헤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초 민주주의를 배우고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 시작된 선거가 과열 혼탁해지면서 오히려 어린이들에게 그릇된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돈이 없어 떨어졌다는 생각에 씻지 못할 불신과 소외감만 양성하는 꼴로 전락하고 있다.
순수하고 사회에 대한 신성함을 동경하며 자라나야할 어린아이들이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그것은 아이의 성공이 곧 나의 자랑임을 맹종하는 학부모들의 사치스런 과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아이들의 세상일을 어른의 잣대로 잴려고만 하는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의 그릇된 생각으로 인해 아이들은 창의성과 순수함을 잃고 ‘돈이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또다른 사회의 변종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의 선거가 변질되고 있는 이유가 또 있다. 학교측은 어린이들 스스로 자치기구를 만들고 그들 스스로 이 조직을 끌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데 게을리하고 있다. 결국 이 같은 절름발이식의 학생회는 어른들과 선생들이 관여하는 틈을 만들어 줌으로써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이는 아이들에게 ‘누가 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공약에 대한 판단보다는 돈 있는 집 아이들이 사주는 피자나 각종 선심성 선물에 무기력해지고, 후보자들 역시 명예욕에만 치우친 채‘당선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무책임을 양산하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학부모들이 진정 아이들을 위한다면 자중하고 아이들의 일은 아이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 스스로 순수함을 잃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먼 미래가 이들의 손에 달렸다면 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것이 어른들이 할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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