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영어 남발 교육기관이 주도
무분별한 영어 남발 교육기관이 주도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5.09.08 10:27
  • 호수 7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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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문자로 남의 나라 문자가 아니며 한자 공부를 많이 해야 동양문화를 이해하고 우리의 문자와 언어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영어가 청소년층을 위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주요 매체로 자리잡은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기관이 앞서서 국어를 가다듬고 올바른 국어생활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되레 교육기관에서 영어 사용을 주도하고 있다.

전국의 교육지원청마다 ‘위 센터’가 있다. 대부분 주민들이 뭐하는 곳인 줄 모른다. 서천읍의 한 학교에서는 지난 주에 ‘2015 전국 비즈쿨 공모사업’에 선정된 데 따른 행사를 했다는 소식이다. 영어의 ‘비즈니스 스쿨’를 합친 조어로 보인다. 이는 교육부의 ‘작품’이다. 충남도교육청의 ‘작품’도 있다. 충남도교육청이 ‘잉글리시업 경연대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교육지원청에서는 장애우들과 함께 ‘힐링 트레킹’을 했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숲속 길 걷기’라고 하면 얼마나 좋은가. 이런 지경이다 보니 학생들도 따라 한다. ‘퓨처티처 동아리’가 ‘수호멘토 봉사활동’을 펼쳤다는 것이다.

영어를 써야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다른 공공기관이나 사회단체에서도 사업명을 괴이한 영어 조합을 사용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문화사대주의에 빠졌다고 통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병폐는 심각하다. 그 개념에 대해 설명을 듣지 않는 한 도저히 그 뜻을 짐작하기조차 어려워 소통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무분별한 영어 사용은 명백한 현행 국어기본법 위반 사안으로 지적되고 있다. 2005년 1월 27일 법률 제7368호로 제정된 국어기본법은 “국어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여 국민의 창조적 사고력의 증진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법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변화하는 언어 사용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의 국어능력 향상과 지역어 보전 등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정신상·신체상의 장애로 언어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이 불편 없이 국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해야 한다(제4조).”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선언적 규정일 뿐이다. 공공기관에서 이 법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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