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가 질병인가
노화가 질병인가
  • 박병상 칼럼위원
  • 승인 2015.09.21 16:29
  • 호수 7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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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있는 세계 굴지의 반도체회사가 엄살을 자주 떨어 다른 나라의 힐난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천문학적 매출을 올리건만 신상품의 판매 실적이 떨어진다며 걱정하는 그 회사는 반도체로 돈벌이할 시대는 조만간 저물 것으로 예상했다. 대신 생명산업을 회사를 벌어 먹일 분야로 전망한 바 있다.

하긴 재작년 구입한 휴대전화를 바꿀 생각이 없다. 그 사이 새 모델들이 요란한 광고와 함께 출시되었지만 관심이 가지 않는다. 획기적이라지만 그 기능은 사용할 생각이 없다.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일 텐데, 생명산업은 앞으로 돈이 될까? 메르스 퇴치에 들어가는 예산을 상상하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개개인은 어떠한 생명산업에 흔쾌히 지갑을 열까?

5만원 지폐의 신사임당도 강남에 가면 앳된 얼굴로 바뀐다며 우리 성형문화를 비웃는 그림을 페이스북에서 보았지만 생명산업에 성형수술이 포함되는지 알지 못한다. 태어나면 거의 의무적으로 주입하는 몇 가지 면역주사는 큰 부담이 되지 않으니 돈벌이로 보기 어렵지만 이른바 ‘자궁암 예방 백신’은 만만치 않은 비용을 요구한다. 선택의 여지가 있는 만큼 외면하는 이가 많겠지만 앞으로는 모른다. 남성도 그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데, 그 백신을 거부한 자는 자궁암에 든 아내의 원성을 사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자궁암 백신만이 아니다. 피하고 싶은 질병을 예방한다는 약이 요란한 광고와 함께 화려하게 등장한다면 그 생명산업은 성형산업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겠다. 질환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주사를 맞자 멀쩡한 사람을 내세우며 주사를 맞지 않아 죽어가는 사람과 비교하는 광고는 효과를 빚을 텐데, 최근 “노화는 질병일 뿐”이라는 주장이 미국의 한 의학연구소에서 나왔다.

노화를 막는 이른바 ‘슈퍼 DNA’ 3개를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는 “40에서 50대에 하루에 한 알씩 먹으면 100세까지 살 수 있는 약이 개발될 것”이라 기염을 토했다는 것이다. 정부 기관과 ‘노화는 질병’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개최한 연구자는 노화를 지연하는 약물을 허가해달라고 요구했다는데, 만일 허가된다면 막대한 연구비가 자신에서 쏟아질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른다.

노화를 막거나 지연시켜 죽기 전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겠다는 명분을 연구자가 내세웠지만 노화가 질병일까? 노화는 걸리는 걸까? 바이러스나 방사선과 같은 원인 때문에 걸린다기보다 자연스레 노화에 드는 게 아닐까?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픈 노인은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존재일까? 인간의 건강한 평균수명이 길어진다고 하자. 이후 죽음이 엄습하는 고통은 어떤 약으로 해결해야 할까? 그런 일련의 연구는 얼마나 많은 연구비를 요구하고, 그 결과물은 누가 선점할까?

예로부터 “잘 막고 잘 자며 잘 싸면 오래 산다.”고 했다. 평균수명이 전에 없이 늘어난 요즘 약 판매는 늘었고 광고는 기승을 부린다. 상수원에 녹아든 약물의 양이 늘어나는 만큼 생태계는 교란되는데, 이미 충분히 오래 사는 인간은 더 살자 버둥거린다. 불쌍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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