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교과서 국정제 전환에 대한 우려
국사교과서 국정제 전환에 대한 우려
  • 김지철 충남교육감
  • 승인 2015.09.25 21:10
  • 호수 7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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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마(독도)는 우리 고유의 영토이다.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일본에 조공하기 위해 방문했다.’ 우익 교과서로 대변되는 일본 역사교과서의 일반적인 기술로 일본 보수정부와 정치인들의 공통된 역사의식이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 바람은 심각한 역사왜곡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모든 교과서가 역사왜곡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중립적인 위치에서 서술하고 있는 교과서도 여럿이다. 이는 일본이 역사교과서 편찬을 국정제가 아닌 검정제도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검정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지만, 집필에 교육당국이 직접 나서지는 않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국정제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인들이 국사교과서의 국정제를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총리도 여러 차례 국사교과서 국정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의 역사를 수정하려는 일본조차도 시도하지 않는 국정교과서 발행을 우리나라에서 시행한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1974년 유신시대에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였고 권위주의 정부를 거쳐 1996년 문민정부에 이르러 국사교과서 국정제가 폐지되었다. ‘정부의 획일적인 통제가 민간의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 폐지 이유였다. 정치권력의 관점에서 국사교과성의 역사해석이 달라질 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을 당시 문민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교과서 체제는 국정에서 검인정제, 그리고 자유발행제로 발전하고 있다. OECD 선진국을 비롯하여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세계 어떤 나라도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채택한 경우는 없으며, 북한과 베트남 정도만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자율과 자치의 시대, 공존·공영의 세계시민교육 시대에 국정교과서로 회귀하는 것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다.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인문사회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적 창조력이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창의인재를 육성하는 일은 우리 교육의 당면과제이며, 창의인재 육성은 획일적인 교육방식보다는 다양하게 열려있는 교육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국사교과서 국정제는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창의인재 육성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 주도의 획일적 교과서와 일방적 가치관 주입으로 창의인재를 육성할 수 있을까? 현대사회의 핵심가치인 자율성과 비판적 논리성, 창의성은 교육주체와 교육전문가의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되는 자율적 교육을 통해 신장된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또 다른 국론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교육계의 노력은 사라지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서울대학교 역사관련 5개 학과 교수들의 간절한 외침을 인용하면서 사회 대통합을 위한 역사교육을 기대해 본다.

역사 교과서 서술을 정부가 독점하는 정책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이룩한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으며, 똑같은 역사 교재로 전국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 창조 역량을 크게 위축시키고,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 발전에도 장애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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