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재벌들의 폭력
모시장터/재벌들의 폭력
  • 김환영
  • 승인 2015.10.14 09:35
  • 호수 7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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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대천역 자리에는 명보극장이 있었다. KTX 선로정비 후 대천역이 자리를 옮기자 구역사 둘레의 상권이 죽어 경영이 힘들어졌고, 오래 전에 만들어진 이 극장은 대형자본들이 전국을 망라해버린 시지이브이(CGV)들에 비겨 턱없이 낡고 보잘 것 없었다. 그러다 재작년인가, 롯데시네마가 들어와 이 지역의 오래된 명물이었던 명보가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롯데시네마가 다시 문을 닫게 되었고, 명보극장이 리모델링해 명보시네마란 이름으로 얼마 전 다시 개관했다.

출판사를 하는 후배네 식구들이 휴가 차 보령 근처로 내려왔다기에 시내에서 만나 냉면을 먹기로 하였다. 그리고 나는 시내 나간 김에 영화 한편을 보고 싶었다. 애초에는 <암살>을 보려 했는데 시간이 맞질 않아 <베테랑>을 보게 되었다. 유승완의 영화는 아주 오래전 <다찌마와리>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주먹이 운다> 따위를 본 적이 있는데, 좋은 감독이란 생각은 했었지만 쌈박질하는 영화를 볼 기분이 아니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예상대로 영화는 유쾌하고도 처절하게 시종일관 두들겨 패고, 개처럼 맞고, 부러지고, 뒤집어지고, 피칠갑을 한 채 쫒고 쫒기며 사건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 제목 그대로 '베테랑' 강력계 형사(황정인)은 덤프트럭 운전기사인 피해자(정웅인)의 자리에서 실제 가해자인 재벌3세(유아인)의 파탄난 인간성과 자본의 폭력성을 까발리며 종반으로 치닫는다. 감독은 자신의 주무기인 액션과 폭력, 신파적 서정들을 버무려 영화를 꾸려나가지만, 이는 또한 방법적으로도 채택할 수밖에 없는 거였겠다 싶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영화는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고 끝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투성이의 한 죽음을 살아있는 자들이 밝혀내야만  망자(의 죽음)가 눈을 뜰 수 있다고. 그리하여 감독의 이 전언은, 이 영화의 실제적 모티프가 되었을 재벌가의 유흥주점 종업원 폭행사건을 넘어 ‘눈 먼 자들의 국가’를 쓴 박민규 소설가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의 일상 전반으로 영화를 밀어 넣는다.

“우리가 탄 배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베테랑> 관객이 1천3백만 명이 넘어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세 번 째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왜 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영화에 열광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감독 유승완은 한 자리에서 ‘재벌들의 폭력에 너무 화가 나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선진 사회에서는 이미 폐기처분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아직도 이 나라에서는 온 사회를 피로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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