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황금들녘의 마음
■모시장터/황금들녘의 마음
  • 한기수 칼럼위원
  • 승인 2015.10.19 15:37
  • 호수 7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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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수 칼럼위원
도심의 빌딩숲을 지나자 높고 푸른 가을하늘 사이로 황금빛으로 갈아입은 들녘이 살랑이는 바람결에 춤을 추며 필자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는다.

요즘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은 사방이 빌딩으로 둘러싸인 빌딩숲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고향의 향수에 그리 민감하지 못하다. 하지만 필자 또래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대다수가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가을바람에 두둥실 물결치는 황금들녘을 바라보면 옛 추억이 가슴으로 밀려와 설레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고생한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 왠지 코끝이 찡해져 한편으론 마음이 아파진다.

농촌도 요즘에는 거의 기계로 가을걷이를 하지만 옛날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품앗이를 하면서 집집마다 돌아가며 가을걷이를 했다. 물론 지금의 농촌은 그리 하려고 해도 젊은 사람이 없다. 아니 동네에서 젊은 사람이라야 육십 대가 젊은 층에 속하며, 그나마도 사람이 없다.

또한, 가을의 황금들녘이 물결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노고가 있었겠는가? 어둠이 걷히는 새벽부터 다시 어둠이 돌아오는 저녁까지 논과 밭에서 한여름의 태양과 하루의 전쟁을 했을 것이다. 또 어디 그뿐인가? 한여름의 장마와도 싸워야 하고 장마가 지날 때쯤이면 어김없이 태풍이 찾아온다. 비가 많이 와도 걱정, 적게 와도 걱정, 어린아이 다루듯 온 정성을 다해도 때론 하늘에 맡겨야 하는 것이 농사일이다. 그렇게 많은 손길과 기후가 도와줘야 비로소 가을의 황금들녘이 만들어진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익어가는 이 가을에 스쳐가는 사람들이야 차창 밖으로 계절의 풍성함과 즐거움을 가슴에 담아 잠시스쳐가겠지만, 농부의 마음은 자식을 온 정성으로 성장시켜 외지로 내보내는 마음처럼 설렘과 긴장의 계절이기도 하다. 곡식이 풍년이면 기쁨도 잠시 가격이 하락하고, 그렇지 못하면 고생한 보람을 어디에 하소연도 못한 채, 한잔의 막걸리로 마음을 달래며 내년을 기약하는 것이 우리네 농촌의 현실이다.

이제 정부에서도 보다 근본적인 농민을 위한 정책을 더욱 펼쳐줬으면 한다. 생색내기식 정책이 아닌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정책 말이다. 농부는 상여금도, 퇴직금도 없다. 여름내 고생하고 기후가 도와주지 않아 한해 농사를 망쳐도 실업급여도 없다. 하늘만 바라보며 한잔의 막걸리에 자신을 원망하며 근심 섞인 눈으로 가벼워진 통장만 바라볼 뿐이다.

우리의 농촌이 가난해 지면, 우리의 농촌을 지킬 젊은이 또한 없다. 가을은 기쁨의 계절이요, 봄부터 땀 흘린 농부의 마음과 통장을 풍성하게 해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익어가는 가을의 향기처럼, 그간 일 년 내내 고생한 농부의 마음을 우리 모두 조금씩 어루만져 준다면, 깊어가는 이 가을에 낙엽 밟는 소리가 더욱 힘차고 보람되게 맞이할 것이며, 또 내년을 기약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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