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식품 김영근 대표 ‘식품명인’ 등재
농민식품 김영근 대표 ‘식품명인’ 등재
  • 김장환 기자
  • 승인 2015.11.23 17:35
  • 호수 7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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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전서’ 녹말수비법 그대로 도토리묵 생산
도토리 이용 묵·곡주·차 다양한 제품 만들어 내

▲ 판교면 농민식품, 김영근 대표
40대 이상의 중년들에게 도토리묵은 가난한 시절, 배고픔을 달래고 끼니를 때우던 가난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먹을 것이 흔하지 않던 시절, 동네 아이들은 도토리나 상수리가 익을 무렵이면 너나없이 나무 아래서 열매를 주어다 모으는 게 일이었고 바구니에 하나 가득 모이고 나면 어머니가 묵을 만드셨는데 약간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그 맛은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머릿속에 아련히 남아있다.

예전에는 어느집이든 가을이면 도토리나 상수리를 주워 묵을 쑤는 게 일이었는데 판교에는 도토리묵을 만드는 집들이 유독 많았다.

한때 60~70가호에서 도토리묵을 만들어 하루에 5톤 트럭 5~6대가 묵을 실어 서울의 경동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하니 판교가 왜 도토리묵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다 중국과 수교를 맺으며 중국산 도토리의 유입으로 판교 도토리묵은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바쁘게 살아가는 요즘에 돈이 안 되는 도토리를 주울만한 인력이 없다보니 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도토리를 수급하기도 어려운데다 현대인들의 입맛이 달콤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하면서 도토리묵은 그저 추억 속의 음식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한때 배고픔을 달래던 음식에서 동동주에 어울리는 안주 정도로 대접받던 도토리묵이 최근 칼로리가 적은 다이어트 음식으로, 중금속 배출을 돕는 건강식품으로 재조명 받으고 있다. 이와 함께 주목받는 이가 판교면 농민식품의 김영근(61) 대표이다.

판교 만덕리에 이사온 조부 김종석씨의 대를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김영근 대표가 묵과 함께 한 인생이 벌써 40여년이 훌쩍 지났다.

17세 때부터 부친의 도토리묵 장사를 돕다 지난 1975년 농민식품 운영을 시작했고 조부로부터 조선시대 ‘시의전서’의 녹말수비법에 수록된 도토리묵 제조법을 고스란히 전수받아 전국 최고의 도토리묵을 생산하고 있다.

김 대표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국산 도토리만을 원료로 사용해 탄력 있고 부드러운 도토리묵을 생산해 내면서 우체국 판매는 물론 한살림, 생산자협동조합, 친환경매장, 신세계백화점 등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김 대표는 이와 함께 기계를 통한 도토리 가루 생산법과 도토리차 제조 방법, 도토리곡주  등 새로운 제품 개발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며, 묵 체험 교육관 및 전시관을 짓는 등 전통식품 계승·발전을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 도토리곡주를 세심히 살펴보는 김영근 대표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지정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식품 명인은 전통 식품을 계승·발전시키고 기능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농식품부가 지난 1994년 도입한 제도인데 여기에 김영근 대표가 서천에서는 처음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식품명인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식품 제조·가공·조리 분야에서 20년 이상 종사하거나 전통식품 제조·가공·조리 방법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하며 국내에는 총 72명만이 식품명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영근 대표는 “묵과 함께 40여년을 함께 하면서 식품명인으로 이름을 올리게 돼 기쁘다”며 “늘 그랬듯 전통방식 그대로 묵을 만들어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고 품질 좋은 묵을 생산하는 데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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