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의 길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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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장환 기자
  • 승인 2016.02.29 11:34
  • 호수 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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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실’ 25명 졸업생 배출
국어·수학·영어 등 3년, 640시간 정규 교육 받아야

나는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나는 엄마하고 고생 많이 하고 살았다. 그래서 엄마하고 동생 7남매를 키웠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어서 엄마가 바다에 가서 바지락 캐고 굴 잡고 해서 시장에 가서 팔아가지고 쌀 사오면 동생들 밥 해주고 밥 없으면 밭에 가서 고구마 순 따서 삶아주고 엄마 오면 밥 해주께 하면서 같이 먹고 “얘들아, 엄마 오면 밥 해주께” 했다 배가 고파서 울면 업어주고 코 나오면 닦아주고 그렇게 했는데 남들은 학교 간다고 달리면 필통소리가 찰칵 찰칵 나면 나는 언제 저렇게 해볼까 하다가

▲ 서천군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실 졸업생들
내 동생들이나 보내야지 했는데 시대가 좋아서 나도 공부를 하는데 선생님들께서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나도 편지도 쓰고 시도 쓰고 책도 읽을 수 있다.

위글은 지난해 11월 31일 서천군문해교사협의회가 주관한 ‘제4회 서천군 성인문해학습축제’백일장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서면 박연희씨(73)의 글이다. 어려웠던 시절 배움의 기회를 잃고 늦게서야 글을 깨우치고 나서 작성한 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졸업장을 받는 나도검 어르신
지난 26일, 문예의전당 소강당에서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군이 ‘문해교실’을 통해 초등학교의 학력을 인정을 받은 나도검 어르신 외 24명의 어르신들을 위해 ‘제 1회 서천군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실 졸업식’을 마련한 것이다.

곱게 차려입고 학사모를 쓴 어르신들마다 설레는 마음은 다들 한결 같은지 손을 만지작거리며 다소곳이 앉아 졸업장 수여식을 기다리는 것이 어린 소녀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졸업생들 사이에 오화자 어르신이 학사모를 쓰고 있어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소감을 물으니 “3년 간 열심히 다녀서 오늘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돼 기쁘다”며 “이런 자리를 만들어 준 선생님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 황양희 어르신을 축하하기 위해 나온 가족들
졸업식 축하무대가 끝나고 ‘제 1회 서천군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실 졸업식’이 진행되자 어르신 한분 한분에게 졸업장이 수여됐다.
어르신들이 졸업장을 받고서 믿어지지 않는지 연신 졸업장을 보고 문지르며 가슴에 꼭 껴안고 놓지 않는 모습을 보니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들 어르신들이 졸업장을 받는 소감을 보니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편지를 쓸 수 있게 돼서 행복합니다”, “동창생이 생겨서 행복합니다”, “한국어를 할 수 있게 되서 너무 기쁩니다” 누구나 공부를 하고 편지를 쓰며 동창생이 있기에 일반인들에게 별다르지 않은 사연들이다.

하지만 뒤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고 읽으며 편지를 쓰고 학교를 함께 졸업할 수 있는 동창생이 있다는 것, 일흔이 넘은 나이에 ‘문해교실’을 통해 3년 간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25명의 어르신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커다란 행복인 것이다.

▲ 감사의 글을 낭독하고 있는 전순금, 김화중 어르신
이들 어르신들이 이번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계기는 군이 정규교육의 기회를 놓친 주민들에게 초.중학교 학력 취득기회를 제공하고, 교육을 통한 사회통합 유도와 평생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지난 2013년 충청남도 교육감으로부터 서천군 종합교육센터와 서천군노인복지관이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기관’으로 지정받았다.

이후 서천군 종합교육센터는 22명, 서천군노인복지관에 16명의 어르신들이 교육에 참여했고 국어를 비롯해 영어, 수학, 재량활동, 특별활동 등 학교와 동일하게 진입평가, 형성평가, 총괄평가 등 시험을 치르며 이수과정들을 거쳤다.
또한 어르신들이 초등학력 인정을 받기 위해 1단계 160시간, 2단계 240시간, 3단계 240시간인 3단계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3년이란 긴 시간과 까다로운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처음에는 38명의 어르신들이 입학했다가 최종적으로 25명만이 졸업장을 받게 됐다.
이번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게 된 김옥환 어르신은 문해교실에 나오면서 자신감이 높아지고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김옥환 어르신은 “남편을 여의고 자식도 출가를 시킨 후 혼자라는 생각에 가끔 우울할 때가 있었지만 문해교실을 다니면서 많은 친구가 생겨 우울증도 사라졌다”며 “함께 모여 공부를 하다 보니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작은 것이라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지금은 큰 행복을 느끼고 산다”고 말했다.
평생교육팀 신현정 주무관은 “학력인정 문해교육이 비단 초등학력을 취득하는 것을 떠나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경제적 사회적인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군민 누구나 학력을 취득할 수 있는 교육기회 제공하고자 노력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 1회 서천군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실 졸업식’ 수상자는 서천군 종합교육센터 구재용, 김옥식, 김옥환, 김화중, 나도검, 박봉의, 박순자, 박순희, 양도자, 오화자, 이태수, 임수월, 지언희, 차규희 어르신이며 서천군노인복지관은 임옥희, 전순금, 나아지, 백옥기, 백우현, 이삼부, 김정자, 정월순, 차상예, 함순희, 황양희 어르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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