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와서 이 마을에 정착했지요”
“눈이 많이 와서 이 마을에 정착했지요”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03.07 11:10
  • 호수 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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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윤주봉씨,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

▲ 금복리에 정착한 귀촌인 윤주봉씨
문산면 금복리 안태마을은 그리 깊지 않은 골짜기에 4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산간마을 중에서도 제법 큰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70~80대이고 마을에 금복리 보건진료소가 있다.

골짜기는 동쪽으로 터져 있고 그 앞으로는 길산천의 지류인 도마천이 흐른다. 북쪽, 서쪽 남쪽은 산으로 둘러 막혀 겨울에 눈이 오면 움푹 들어간 지형인 이 마을에는 서천에서도 가장 많은 눈이 쌓인다.

2007년 이 마을에 정착한 윤주봉씨(62)를 만났다. 왜 이 마을을 선택했는지 물어보았다.

“눈이 많이 와요. 눈이 덮이면 포근하잖아요.”

나이가 든 세대들 가운데 산간마을에서 자란 사람들은 겨울에 눈이 쌓이면 교통도 끊기고 동네 가게의 생필품도 동이 나 성냥이 떨어져 어머니는 이웃집으로 불을 꾸러 가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푸근했다. 온돌 방 안에 수수로 엮은 저장소에 담긴 고구마를 꺼내 화롯불에 구워먹으며 이웃집 동무들과 놀던 기억도 날 것이다.

윤씨는 토목 건설업에 종사하며 전국 각지의 공사 현장에서 일해 온 이 방면의 베테랑이다. 터널 뚫는 일을 많이 해왔다. 10년 전 서천~공주간 고속도로 공사를 하다 이 마을에 와보게 되었는데 겨울에 눈에 푹 담겨있는 마을 모습에 매료됐다. 그가 태어난 당진도 눈이 많이 오는 고장이었다. 그는 눈이 많이 오는 고장에서 노후를 지내기 위해 강원도 태백산 자락에 땅을 마련해 둘 정도였다. 그러나 3년 계속 눈쌓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 금복리 안태마을 전경
그는 강원도 땅을 정리하고 금복리에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었다. 눈이 많이 내리면 건설업에 종사하는 그는 만사를 잊고 눈 속에 묻혀 쉴 수 있는 시간이다. 거친 세상을 살아온 그가 그가 눈을 좋아하는 이유도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고령층이 대부분인 마을에서 만능 재주꾼이다. 웬만한 전기, 보일러 등이 고장나면 마을 사람들은 그를 찾는다. 이제는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된 것이다.“80이 넘은 주민들 노인들, 독거노인도 많아요. 이 분들 기름값 아끼기 위해 겨울이면 마을 회관에서 살다시피 해요. 집에서는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는데 그러다 보일러가 어는 수가 있어요. 가서 고쳐주면 다들 좋아하시는데 당연히 내가 해야죠.”일찍 부모님을 여읜 그는 내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 같아 자신도 마음이 기쁘다고 한다.

지난 겨울 금복리에도 눈이 많이 쌓였다. 서천 웬만한 곳은 다 녹았는데 이 마을은 가장 늦게까지 눈이 남아 있었다.

“눈이 오면 어르신들 회관에 오시기 어렵잖아요. 그러면 가서 눈을 치우고 회관으로 가는 길을 내드립니다. 그러면 좋아하셔요. 집안 일 하다가도 시간이 나면 어르신들 찾아가 살아온 이야기 들어요.”

가슴치는 사연을 듣는 재미도 있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면 어르신들이 좋아하신다고 한다.
6남매 가운데 4남인 그는 재작년 누님에게 이 마을을 소개하고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이들수록 동기들 모여 살아야 해요. 나이 들면 보고 싶어도 못보고 죽을 때나 가보는 경우가 많아요.”마을 맨 꼭대기에 있는 그의 집 주변에 텃밭을 일구어 채소는 자급자족하며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가끔 청주에 있는 자식들이 찾아온다.

작년부터 그는 소 두 마리를 키우는데 일 끝나고 와서 소 밥주는 재미로 키운다고 한다. 산기슭에서 꼴을 베어다 소를 주면 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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