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터전 지키는 독립운동가 후손들
조상 터전 지키는 독립운동가 후손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6.04.04 16:43
  • 호수 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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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지리 이장 김석중씨, 월남 선생 손자 이은직씨

▲ 월남선생 손자 이은직씨(왼쪽)와 김갑수 선생 손자 김석중씨
한산면 종지리 두 분의 독립운동가가 태어난 곳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과 김갑수 선생이다.
1903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기독교 사상을 받아들인 월남 선생이 1904년 YMCA의 전신인 황성기독청년회에 가입한 후 고향인 종지리에 교회를 세우려 하자 월남 선생의 뒷집에 살던 김갑수 선생의 부친은 교회를 설립하는 데 자금을 대었으며 논산의 한 고가를 헐어 목재를 배로 싣고 와 종지리 교회를 세웠다 한다.

김갑수 선생은 13세 때인 1907년 월남 선생의 주선으로 상경하여 경신학교에 들어갔다. 김갑수 선생은 월남 선생 댁에서 기숙하며 공부를 했다. 이 때 함께 공부한 사람이 변영로, 장면 등이었다.

21세 되던 1915년 그는 월남 선생의 권유로 중국 상해로 건너가 난양(南陽)대학에서 여운형, 서병호 등과 함께 수학하였으며 이 때부터 김갑수 선생은 조선인 유학생회를 이끌며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의정원 충청도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김갑수 선생은 같은 의정원 의원인 전북 출신 윤건중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임시정부 발행 국채를 가지고 국내에 들어와 전북의 임피 등지에서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후 독일에서 유학했으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전북 완주에서 민족자본의 육성과 임시정부 자금 마련에 진력하다 1938년 45세의 아까운 나이에 작고했다.

그가 살던 종지리에 그의 손자인 김석중씨가 살고 있다. 그는 한산초등학교와 군산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유학했으며 인천에서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와 김갑수 선생을 비롯한 조상들의 위선사업에 몰두하며 조상들이 뼈를 묻은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의 웃집에는 월남 선생의 손자인 이은직씨(83)가 살고 있다. 월남 선생의 후손들은 매우 어렵게 살아왔다. 한 나라가 이민족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면 이를 이룩하게 했던 독립운동가를 표창하고 독립운동사 발굴이 붐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3년 후인 1948년 정부가 수립됐지만 이에 대한 일을 수행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 시절 내내 독립유공자에 대한 포상이 없었다. 1949년 4월 ‘건국공로훈장령’이 대통령령 제82호로 제정 공포되었는데 이 때 서훈자는 이승만 대통령 본인과 이시영(이회영 동생) 부통령 둘 뿐이었다. 민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월남 이상재 선생에게는 1962년에 와서야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김갑수 선생에게는 1993년도에야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월남 선생과 김갑수 선생이 이웃에 살았드시 그 손자들이 이제 종지리를 지키며 이웃에 살고 있다. 김석중씨는 1월부터 종지리 이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80세이다. 60여호 되는 마을 사람들 위해 발품을 파는 일이 잦다.“아직은 건강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어요.”

종지리는 한산면에서 지현리 다음으로 큰 동네였다 한다. 두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서로 의지하며 마을을 지키는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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