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저사, 정성으로 베를 짜는 여인의 덕 칭송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저산팔읍길쌈놀이’
2011년 11월 2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6차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줄타기, 택견, 한산모시짜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 등재됐다.
이후 한산모시문화제는 유망축제에서 우수축제로 격상되어 오는 3일 27회를 맞는다. 한산모시문화제의 주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모시문화제의 시작 한산모시제
모시각은 모시의 수호신을 모시는 곳이다. 모시각을 둘러보면서 모시의 유래와 백저사(白紵詞)를 감상하는 것도 빼놓을 수없는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모시각 옆에 시비가 하나 있는데 시비의 뒷면에 괴음(槐陰) 신영락(申英樂)의 한시, 노흥래 역, 박우철 서 ‘백저사(白紵詞)’가 있고 앞면에는 구인환의 글, 구영환 서 ‘한산 모시의 유래’가 적혀있다.
시비는 공주대학교 김경화 작으로 모시적삼을 입은 선비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시각을 둘러보면서도 신영락이 누구이며 백저사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중부대학교 신웅순 교수(시조작가)에 따르면 신영락은 한산 숭문동 출신 석북 신광수의 증손자로 숭문 8문장의 한 사람이다. 석북 광수, 기록 광연, 진택 광하 3형제를 3광이라 했고 석북의 아들 3형제와 손자 및 증손을 포함하여 숭문 8문장이라 했다.
“鵝州女兒年十五, 生長土窟纖纖紵 (한산골 아가씨 그 나이 열다섯살 토담집에 자라나서 가는 모시 짜고 있네)” 로부터 시작되는 이 한시는 시집와서 정성으로 베를 짜는 여인의 덕을 칭송하고 있다. 시집갈 때 규수범절, 바느질 먼저 묻지 않고 길쌈 재주 먼저 묻는다는 한산의 생활상을 엿볼 수가 있다.
◆모시짜기의 공정에 담긴 인고의 세월
가는 세모시는 모시째기 과정에서 형성되는데 여인들의 치아에서 탄생한다. 이를 무릎에 대고 한 올 한 올 잇는 모시삼기 과정에서 삶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각 공정에서 사용되는 도구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모시베는 오일장에 내놓으면서 지역 공동체내에서 커다란 사회적 기능을 수행했다. 중간 단계의 태모시나 굿모시 형태로도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한산의 새벽 모시시장은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업의 터전으로 1980년대까지 존속했었다.
◆모시문화제의 절정 저산팔읍 길쌈놀이
길쌈은 삼남지방(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서 음력 7월부터 8월 추석까지 특히 성행했는데 . 온 동네 부녀자들은 장정들이 조직하는 두레와 같은 형태의 공동길쌈을 조직하고 길쌈솜씨를 경쟁했다. 여러 집의 길쌈을 돌려가며 했으며, 이를 전부 끝낸 다음 결산하면서 유쾌하게 놀았다.
이러한 한산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한산 모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이와 관련한 민속놀이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저산팔읍(苧山八邑)길쌈놀이’라는 이름으로 제23회 전국민속경연대회(1982)에 충남 대표로 참가했다. 여기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하였고 이어서 1986년에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그 후 수상 경력에 힘입어 1991년 7월 9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고, 매년 한산모시문화제에서 시연하고 있다.
◆장인의 손길 바디장과 부채장
그동안 맥이 끊겨 안타깝게 여기던 바디 제작의 현장을 이번 모시문화제에서 볼 수 있다. 바디를 만들고 있는 사람은 한산면 동산리 유산 마을에 사는 윤기문(60)씨이다. 그가 처음 바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30여년 전이다. 그의 부인이 모시 길쌈을 하며 살림에 보탬이 되어 왔는데 사용하던 바디가 고장이 났다. 그는 이를 고쳐보기로 맘먹고 바디를 분해해 특성을 파악한 다음 다시 쓸 수 있도록 수리했다. 이 소식이 인근에 알려지며 낡은 바디를 수리해주다 바디를 만들게 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