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산모시축제’를 다녀와서/한산모시다움’을 보고 싶다
■기고/‘한산모시축제’를 다녀와서/한산모시다움’을 보고 싶다
  • 권미강 (현)현장언론 민플러스 문화교육 에디터
  • 승인 2016.06.15 13:58
  • 호수 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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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에 대한 아름다움·애환 담긴 백저사
시콘서트·문학콘서트로…다양한 예술장르와 결합하자

 

▲ 모시각
고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마는, 내게 있어서 ‘한산’은 고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한산’이 고향이어서 행복한 사람이다.

지난 6월 3일부터 6월 6일까지 있었던 한산모시축제에 다녀왔다. “모시축제 안 오냐?”하는 엄마의 성화가 있긴 했지만 여러 번 모시축제를 보아온 터라 이번엔 어떻게 치러지나 보고 싶기도 했다. 마침 월요일이 현충일이어서 부담없이 고향길로 출발했다.

축제 3일차인 일요일, 집안 일정을 바쁘게 마치고 오후에 모시축제장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이미 한산시내 여기저기 축제장에 왔을 사람들이 주차해놓은 차들이 즐비한 터라, 다리가 불편하신 엄마에게는 죄송했지만 그냥 걸어서 축제장으로 갔다. 길가에 주차된 차량으로 걸어가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스피커소리를 비롯한 각종 소리들이 뭉쳐서 사람들의 귀마다 똘똘 뭉쳐 다니는 듯 했다. ‘덥기도 덥고 다리도 아프다’며 좀 쉬자고 하시는 엄마와 딸을 마침 마당극이 펼쳐지는 트럭으로 된 간이 공연장에 있으라 하고 혼자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과거 지역축제에 대한 모니터링단 활동을 해온 터라 그 직업병이 도진 것도 있지만, 내 고향 한산의 모시축제가 어떻게 좋은 지역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는지 출향인으로서 확인하고 싶었다.

▲ 저산팔읍길쌈놀이
축제장은 예전의 그것보다 훨씬 정돈돼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주무대장을 새롭게 조성해서 서천군 각 면의 홍보부스를 설치한 것이 눈에 띄었다. 한산모시관에서 재현되는 각종 모시체험도 흥미롭게 진행됐고 모시떡, 모시와플, 모시송편 등 모시를 이용한 다양한 먹을거리와 명주인 소곡주 전시코너 그리고 각 지역의 크고 작은 상품들의 전시와 판매부스 등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대명제에도 부합했지만 “서천군에서 참 많은 농산물과 좋고 멋진 제품들이 생산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나름의 자부심도 생겼다.

하지만 아쉬움도 컸다. 이것은 어쩌면 한산모시축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의 축제평가를 통해 늘 지적돼는 문제가 바로 각 지역축제만의 특색이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산모시축제의 프로그램을 앞의 ‘한산모시’만 빼고 ‘영주사과’를 넣거나 ‘금산인삼’을 넣어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각 지역의 주 모델이 되는 콘텐츠와 관련된 프로그램이야 당연히 다르겠지만 말이다. ‘모시’와 관련된 체험행사, 전시, 저산팔읍놀이 같은 프로그램 등등 말고는 거의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이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3년간 대외홍보팀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경주엑스포가 늘 지적받아온 것이 ‘문화콘텐츠의 백화점식 나열’이었다. 내용에는 경주라는 천년고도를 담았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문화콘텐츠로서 가치를 높이 평가할 내용이 적었고 그저 이벤트성 프로그램들로 나열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화콘텐츠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지적받았고 내부적으로도 그런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시인했었다.

▲ 태모시
이번 모시축제를 둘러보면서 놀랐던 것은 프로그램의 편성과 내용이 10년 전 경주엑스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날, 시도의 날 등이 있어서 각 나라 및 지역 홍보와 관객동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프로그램이 면민의 날과 각 면 홍보부스로 벤치마킹 돼 있었다. 이에 대한 세세한 지적과 비판은 접어두고, 각 면의 공동체의식 확산과 서천군의 다양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괜찮았다.

먹을거리코너도 지역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모습이 좋았으나 축제장 주변 일부 외지상인들의 음식천막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조직화된 이들의 음식장사를 여타의 다른 축제장에서도 어찌할 수 없음을 알기에 접어둔다. 외국의 축제장이나 관광지에서 벤치마킹해 전국 곳곳에서 다양하게 접목되고 있는 스템프도 그럭저럭 혼선을 빚은 동선 표시로 미숙한 점이 드러났지만 그것은 보강을 하면 될 일이다.

1회 소곡주축제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소곡주전시코너에서는 진짜 아궁이에 불을 떼서 술이 제조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줬는데 불볕더위인데도 많은 관람객들이 흥미롭게 지켜봤다. 모형의 불과 도구가 아닌 진짜 불을 통해 한 방울 한 방울 술이 내려지는 과정과 쌀과 누룩 등의 재료전시는 한 잔의 술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노고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 불소곡주 내리기
축제장에서 만난 지인은 예년에 비해서 “축제가 많이 정돈됐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예, 그런 것 같아요”라고 했지만 이내 여러 가지 문제도 많다고 말해버렸다.

그 몇 가지 중 하나가 다문화코너다. 뜬금없이 페루음악인들과 터키 음식, 남미의 박물들과 옷가지들을 판매하는 코너가 있다는 것은 모시축제에서의 넌센스다. 그 모습은 대전의 견우직녀축제에도 있었고 경기도 어느 도시의 축제장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모습인데 왜 한산모시축제장까지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서천군의 다문화가정이나 센터와 연계한다면 어떨까? 물론 부스 사이에서 언뜻 다문화 관련 부스를 본 것도 같지만 이런 식으로 뜬금없이 끼어 넣는 것은 어쩌면 아주 조심스럽지만 상업적인 연관성도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오히려 실크로드 같이 모시의 경로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증명해보이고 모시를 의복으로 활용했던 나라를 조사해 그걸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개발해서 축제에 접목시키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 옆의 놀이시설도 그다지 의미 없어 보이긴 마찬가지다. 그저 어른들의 시각에서 그런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식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는 컨셉으로 서너 개의 무대가 있었는데 사실 좀 정신없었다. 낮의 주무대에서는 지역 예술동아리공연이 진행됐고 다른 무대에서는 마당극이, 또 다른 무대에서는 음식경연대회가 다른 무대에서는 패션쇼가 진행됐다. 경주엑스포를 축소해놓은 듯한 이 그림에 실소가 나왔다. 10년 전 아니 어쩌면 지금도 조금 세련됐을 뿐 여전히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엑스포의 프로그램 진행이 모시축제장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배려가 아니라 공연팀에게도 축제 관람객들에게도 그리 좋은 진행방식이 아니다.

과거 경주엑스포에 대한 세미나에서 발제자였던 나는 다소 과격(?)했지만 ‘문화의 다양성이 아닌 문화통조림을 만들어 획일화 시키는 것은 문화엑스포로서 맞지 않다’고 지적했었다. 아직도 진행방식들이 각 지역축제에서 버젓이 적용되는 것은 아무래도 축제를 기획사에만 맡겨버리는 우리나라 축제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다.

거기에다 잔디마당에 미적 감각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주변의 풍광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멘트무대도 마땅치 않은데 대형 천막이라니... 물론 더위로 인해 관람하기가 어렵겠지만 오히려 주변의 나무그늘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관람하는 것이 훨씬 돋보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방향조차 뜬금없는 대형가건물 천막은 생각 없는 광경이었다.

겨우 일 년에 한번 하는 축제를 위해 이런 설치물에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잔디마당에 만들어진 전시관 또한 그렇다. 뭔가 다른 형태의 전시가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고향 한산의 모시축제가 지역의 문화콘텐츠로서 자리를 잘 잡았으면 좋겠다. 한산을 잘 모르는 기획사들에게 전부를 맡기기보다는 기술적인 것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지역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번 끌어내 보자는 것이다. 한산 아니 서천군 출향인들 중에는 문화예술이나 예술행정 관련한 이들이 여럿 있다. 고향을 위한 일인데 그에 대한 조언들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축제장을 돌아보니 군민들 중에서도 멋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분들과 함께 제대로 된 축제기획위원회를 만들어보면 어떤가? 무슨 무슨 기관단체니 회장이니 하는 사람들 말고, 문화예술적으로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 전문성을 지닌 지역이나 출향인들로. 여기에는 어떤 욕심도 실리도 개입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모시라는 이미지가 젊은이들과는 맞지 않는다지만 이걸 역이용해 젊은이들의 발길을 잡을 수 있는 콘텐츠 개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점과 목은 이색, 신석초, 박경수, 나태주시인 등 많은 문인들을 배출한 군으로서 문학을 콘텐츠화 한(단순한 시낭송회가 아닌)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좋은 소재가 있다. 모시각에는 가사인 백저사가 새겨져 있는 비석이 있었는데 바로 무릎이 탁 쳐졌다. “그래 이런 좋은 콘텐츠 소재가 있는데, 이걸 이용해야지...”

백저사 가사는 아주 탁월했다. 시조가 아닌 우리 전통가사로서 모시에 대한 아름다움과 애환이 깃들어있는 내용이다. 이걸 두 가지 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다. 하나는 ‘백저사 콘서트’다. 백저사와 다양한 예술장르를 결합해서 하나의 문학공연물로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시콘서트나 문학 콘서트를 기획해온 나로서는 가슴 뛰는 고향의 콘텐츠다.

그리고 한 가지는 백저사를 이용한 랩경연대회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레퍼서바이벌인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랩은 힙팝, 비보이, 락킹 등 스트릿댄스를 위시한 거리공연문화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젊음의 문화를 대변하기도 한다.

모시작업의 애환이 담긴 ‘백저사’를 수 백 년 후 젊은이들이 랩으로 표현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문화적 적용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단, 이런 콘텐츠 개발은 정말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제대로 풀어가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모시와 모시축제의 정체성만 손상되고 상업적인 경향으로 흐른다면 하지 않은 만 못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고향의 축제가 어디서나 볼 수 있고 그래서 어떤 특색도 없이 앞 글자만 떼면 어느 고장의 축제와 똑같은 복제품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백제라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백의민족 하얀 색의 옷과 술이 고스란히 이어지는 멋진 문화들이 미래의 역사에서도 이어졌으면 한다.

축제는 그 지역문화콘텐츠의 확장이자 새로운 문화의 발로다. 그 확장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서 ‘한산모시다움’을 지닌 한산모시축제를 보고 싶다.

▲ 백저사가 새겨져 있는 모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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