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장터/강동6주’의 서희를 그리며
■모시장터/강동6주’의 서희를 그리며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16.09.13 16:06
  • 호수 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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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복 칼럼위원
“거란 장군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하옵니다.”
“이거, 큰일이군! 외적을 물리칠 무슨 방도가 없겠소?”
“적군이 개경까지 곧바로 내려온다면, 15일 걸립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청천강에서 막거나 대동강에서 막아내야 하는데, 그 안에 군사를 소집하여 나아가는 것조차 이미 늦은 줄로 아옵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대동강 이북을 떼어주고, 송과의 외교관계를 끊으며, 거란과 친교를 맺는 것이 상책인 줄 아옵니다.”
“뭐요? 외적과 싸워보지도 않고, 비겁하게 두 팔부터 들자는 것이오? 폐하! 죽을 때 죽더라도 모든 군사를 총동원하여 맞서 싸워야 하옵니다.”
“싸우다니요? 우리 군은 총동원 해봐야 20만도 못됩니다. 그동안 전쟁터를 누벼온 거란 군에게 대항하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식이요. 우선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후일을 도모함이 마땅하오.”
“후일은 무슨! 고려의 기개와 정신을 저들에게 당장 보여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무시하고 자기들의 요구를 내놓을 것이오. 이웃 송국과 신의로 맺은 형제관계도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일이오. 비록 지금 지더라도 싸워야 하옵니다.”
“그만들 두시오! 조부이신 태조(왕건)께서 북진정책을 추진하라는 완고한 유시가 있었건만,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은 짐의 대에 이르러 그 뜻을 받들기는커녕 그들에게 짓밟히는 신세를 면할 길이 없구려!”
“폐하! 심려하지 마오소서. 한 국가의 융성함은 국론(國論)에 있고, 강건함은 군사에 있다고 하옵니다. 강건함만으로는 융성함에 비할 바 없는 법이오니, 폐하께서는 국론을 모으는 데 진력하옵소서.”
“그게 무슨 소리요? 지금 고려가 백척간두에 몰려 있음이 아니오!”
“저 외적들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저 혼자 물리칠 것이오. 그대들은 먼저 패배 의식을 버리고, 고려를 바로 세우겠다는 마음가짐이나 한 가지로 세우시오.”

그는 서희였다. 993년 성종 12년, 소손녕을 앞세운 거란 80만 대군을 맞아 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서 적장과 담판으로 그들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강동 6주’를 회복한 인물이었다. ‘강동 6주’는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거란의 침입 이전에 고려의 국경이 청천강에서 영흥까지이었던 것을 압록강에서 영흥에 이르게 하였다.

이 때, 거란은 요(遼)국을 세우고, 송을 공략할 태세를 갖추고 있던 시점이었다. 거란은 그에 앞서 고려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고려는 건국 초부터 송과 친교관계를 돈독하게 맺고 있었으니, 그들이 송을 공략할 때 후미에서 고려가 그들을 공격해 온다면 큰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에 거란은 고려에게 옛 고구려의 땅을 내놓고, 송과의 친선관계를 끊게 만드는 엄포를 통하여 확실하게 굴복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거란 80만 대군의 침략은 왕과 신하들 모두에게 패배의식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따라서 당시 고려의 운명은 백척간두이자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신세였다. 우선적으로 항복하자는 쪽이나 싸우다 죽자는 쪽 모두 고려의 패배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러나 서희는 그들의 속내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읽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의 속내를 잘 이용한다면, 실(失)보다 득(得)을 얻을 수 있다는 정세 판단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후 거란의 2차, 3차 침입은 하나 된 국론으로 물리치면서 고려의 위상을 한 층 드높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이 그 때와 다를 바 없다. 북한의 ‘핵무기 기정사실화’를 위한 도발,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과 미국이란 강대국 사이에서 대외적인 외교관계의 위축 등은 대한민국을 불안하게 몰고 가고 있다. 이 때 서희와 같은 지도자가 진정 필요한 때이다. 이 난국을 잘만 활용한다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중국과의 친선관계를 더욱 다지면서 북한을 평화통일의 장으로 스스로 나오게 할 수 있다.

방법은 현 정부가 지금까지 고수해온 외교정책을 신중하고, 다양하게 고려해 보는 것이다. 때로는 현 정책을 반대로 뒤집어 보는 것도 난제 해결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부디 국민 여론과 진정 국익이 되는 쪽으로 정책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재고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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