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외환위기 시대가 다시 온다고?
■ 모시장터/외환위기 시대가 다시 온다고?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6.09.28 18:24
  • 호수 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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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용 칼럼위원
지난 주말 끔찍한 뉴스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실업·기업파산… 주요 경제지표 ‘외환위기 수준' 줄줄이 추락’
연합뉴스가 내보낸 기사의 제목 그대로다. 이 제목으로 보면 단연 1면 머리기사로 올려도 될 만큼 중대한 뉴스다.

‘외환위기’라. 바로 1997년 가을을 얘기하는 게 분명하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기성세대들로서는 그 말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돌이켜 상상하기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당시 신한국당(현 새누리당의 전신) 김영삼 정부의 실정으로 한국 경제는 대외 적자를 갚지 못해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김영삼 정권 아래서 ‘선진국 진입’을 명분으로 무리하게 확장정책을 추진하고 이에 고무된 기업 개인들의 씀씀이가 헤퍼지면서 나라살림이 거덜났던 일이다. 국제사회에서 신용이 하락하고 마침내 국가 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김영삼 정부는 두 손을 들고 국제금융기구(IMF)로 뛰어가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눈에 보이는 그 여파는 얼마나 끔찍하던가. 도시의 골목과 지하도에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에서도 애물단지가 되어 스스로 떠돌이가 된 노숙자들이 마치 전쟁 피난민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자선기관들의 무료급식으로 겨우 연명을 해야 했고, 망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용납하기 어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줄을 이었다. 오죽하면 자유당으로, 공화당-민정당으로 역대 무적을 자랑하던 50년 철통 권력이 정당한 선거에서 최초로 패배를 당했겠는가.

그런데 그로부터 겨우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여러 경제지표들(‘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객관적 지표 속의 숫자들)이 97년 외환위기 때와 상당히, 판박이처럼 비슷해져가고 있다는 거다. 뉴스에 소개된 몇 가지 주요 지표들을 보면 무엇보다 청년실업률, 신용등급이 떨어지거나 파산하는 기업의 숫자, 전혀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고 있는 일반 가정의 가계소득 수준, 게다가 공장(제조업) 가동율도 74.3% 수준으로 98년 최악이었던 67.6% 수준에 가깝게 떨어지고 있다. 공장 10개 중 3개 정도가 문을 닫고 있다는 의미다.

새누리당 대표가 사소한 절차를 문제 삼아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 문제라는 것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나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일들을 보면 도덕성 문제가 불거진 농수산장관 한 사람의 해임 결의 정도는 누가 단식을 하고 국정감사를 거부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의 축에는 끼지 못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별조사를 연장한다거나 국가 정보기관이 어버이연합이란 단체를 배후 조종했는지 여부를 밝힌다거나 시위 도중 쓰러져 끝내 사망한 농민 백남기 선생의 사망 책임을 다툰다거나 퇴임을 앞둔 대통령 개인의 퇴직 대책이란 의혹을 받고 있는 두 신생 재단의 특혜여부를 밝힌다거나 사드 배치의 필요성 여부를 가린다거나 지진의 위험이 현실화된 마당에 원전의 계속 가동과 추가건설의 당위를 재론한다거나 이제는 국가적 재앙으로 떠오른 4대강 수질오염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따진다거나, 특히 이제는 수치상으로도 또렷해진 경제위기에 대한 대비책과 책임문제 등 긴급하고도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산적해 있는 터에, 겨우 신임 각료 몇 사람 중에 한 사람을 해임시키라는 요구 정도는 정말 조족지혈이 아닌가.

그런데 시작부터 그 절차에 시비를 거는 속내는 무엇이겠는가.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니 이해될 만도 하다. 여당이 이리 무능한 정부를 감싸는 것도 한계가 있지, 국감장에 들어가 야당과 다툴 일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아찔할 것만 같다. 아직 소소한 문제에서 밀렸을 때 기회다 싶게 꼬투리를 잡은 것이다. 내키지 않는 국감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저 많은 문제들 중 어느 것도 다루지 못하도록 시간 끌며 버틸 수 있는 방도도 될 것이다. 마치 밀린 숙제가 많아 혼날 일이 산더미 같은 학생이 마침 기침 몇 방 나오자 감기 걸려서 학교에 갈 수 없다고 버틸 구실을 찾은 것처럼. 단식? 아마 안 먹어도 배부를 것이다.

그런데 그래봤자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명분도 시원찮은데, 국민적 눈총을 외면하고 버티는 심사는 과연 편안할지도 의문이다.

앞에 한참을 열거한 문제들 하나하나가 다 중대하고 심각하며 이보다 더한 문제도 있겠지만, 외환위기 때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경제지표들의 증언, 그 ‘커밍아웃’이 내게는 무엇보다 강력한 충격으로 와 닿는다. 그 지표 속에는, 기업파산, 가정파탄, 하루 30-40명 꼴이나 되는 자살자 수, 빈부격차, 부정부패 같은 어지럽고 비참한 나라 현실이 포괄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호소하지 못하고 자살하거나 살해되거나 스스로 행방불명자가 되어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들은 20년 전 외환위기 시대의 가슴 아픈 상징과도 같았다. 경제지표 추락이란 기사가 예고하는 바를 주시하여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금은 단식이나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고 백남기 선생의 명복을 빈다.

[시인,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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