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지원조차 외면할거면 ‘북한인권법’ 왜 만들었나
수해 지원조차 외면할거면 ‘북한인권법’ 왜 만들었나
  • 충언련 심규상 기자
  • 승인 2016.10.05 19:15
  • 호수 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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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지원이 ‘인권’입니다”

정부가 하는 말이 모순투성이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북한은 최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 사이에 함경북도 지구를 휩쓴 태풍으로 인한 큰물 피해’에 대해 “해방 이후 최악 수준”, “흑심한 대재앙”이라고 밝혔습니다.

유엔 산하 인도지원 기구들이 공동으로 현지조사에 나섰습니다. 유엔 산하 기구들은 지난 16일에 낸 보고서에서 이번 수해를 ‘50~60년 만에 최악수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사망자 138명, 실종자 398명, 이재민 60만 명, 파괴된 가옥만 3만7000여 채에 달한다”고 전했습니다.

세계식량계획(WFP)도 함경북도와 양강도 주민 14만 명에게 긴급 구호 식량을 지원했습니다. 국제적십자사는 52만 달러를 긴급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유엔은 수재민을 긴급구호하는 데만 2820만 달러(한화 약 316억 원)가 필요하다며 세계 각국에 구호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태도입니다. 정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지원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북한인권법’을 발의했습니다. 이 법은 19대 국회 말에 통과돼 지난 4일 발효됐습니다. 여야 간 11년간의 논란 끝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주민도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라며 “북한 인권재단을 통해 북한 주민 인권 증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자연재해 등 인도적 사안의 해결과 북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대북인권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랬던 정부가 정작 북한인권법이 시행되자 말을 뒤바꾼 것입니다. 쓸모도 없는 ‘북한인권법’은 개나 줄일입니다.

수해 동포를 돕지 않겠다는 정부의 인식 자체가 반인권입니다. 추운 겨울에 대전역 부근 노상에서 떨며 동사 위험에 놓인 노숙인을 보고도 나 몰라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은 정부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없다구요? 의무와 권리이전에 수해를 당한 북한 주민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인권’입니다.

핵실험과 수해 지원 여부를 연계시키는 것은 북 주민의 생존을 정치에 이용하는 못난 생각입니다. 교도소에 갇힌 재소자에게 죗값을 이유로 밥을 주지 않겠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에서는 진도 7.0의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군 위안부 전쟁범죄를 부정하고 되레 한국 정부에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그때 남한 정부가 소녀상 철거 주장을 이유로 일본 시민들의 지진피해에 대한 지원을 거절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정부가 이를 이유로 지원불가를 외쳤다면 ‘비이성적’이고 ‘반인권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을 게 자명합니다. 일본 정부의 태도와 지진피해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수해 복구를 통해 꽉 막힌 남북 대화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일부 야당의원이 주장에도 반대합니다. 북 수해를 남북관계를 푸는 전화위복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인식 자체가 정치적일 수 있습니다. 조건 없는, 정치적 손익을 계산하지 않는 지원이 인도적 지원입니다.

혹자는 ‘전쟁 중에 군량미를 지원하자는 격’이라고 반대합니다. 전면전을 하는 상황도 아니지만, 설령 전쟁중이더라도 민간인들은 보호되어야 합니다. 정규군이더라도 전쟁포로에 대해서는 제네바협정에 의거 인간적인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정부는 식량 지원 때마다 분배현장을 모니터링해 지원한 쌀이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제공되고 있음을 확인 한 바도 있습니다.

정부는 북에 대해 지원을 하지 않는 이유로 ‘요청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북측이 수해 지원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북은 매번 ‘죽으면 죽었지 남쪽 당국에 먼저 손 벌릴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 왔습니다.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해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지원입장을 밝혀야 합니다. 남쪽 민간단체의 북 방문을 허용해 정확한 피해 실태와 어떤 지원이 필요한 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남한 정부의 지원을 거절할 경우 남쪽 민간단체와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면 될일입니다.

2016년에 와서도 북한에서 수해로 굶어 죽느니 마니 얘기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북의 주민들은 함께 보듬어가야 할 동족입니다. 민족화해와 협력, 인도적 지원은 동족으로서 가져야할 당연한 태도입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어 정치·군사적 대결이 불가피하지만, 이는 별개로 풀어가는 게 맞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역지사지 심정으로 지원하는 것이 ‘인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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