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어머니’ 시집을 내며
■ 모시장터/‘어머니’ 시집을 내며
  • 신웅순 편집위원
  • 승인 2016.11.16 14:21
  • 호수 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신웅순 칼럼위원
산이/먼저 가고/들이/따라서 갔다
그 때/진달래꽃/그 때/뻐꾸기 울음
뒤 늦은 편지 끝 구절에/말없음표 찍고 갔다
               - 필자의 ‘어머니 11’

  필자가 3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독히도 더웠던 비가 참으로 많이도 쏟아졌던 한여름이었다. 아버지는 지게에다 산 하나를 지고 가셨다. 20년 후엔 어머니가 따라서 가셨다. 지독히도 추었던, 참으로 눈이 많이도 퍼부었던 한겨울이었다. 어머니는 광주리에 들을 이고 가셨다. 아버지는 빗발로 가셨고 어머니는 눈발로 가셨다.

  농촌이었고 산촌이었던 고향 마을. 고갯마루에 오르면 겨울엔 우우우 북풍이 몰아쳤고 들을 질러가면 여름엔 더위가 훅훅 달아올랐다.
  어머니가 가신 10년 후 나는 ‘어머니’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를 낳아 길러주신 내 어머니를 시 아니면 달리 갚을 길이 없었다.

  사월이면 앞산엔 진달래꽃 천지였고 오월이면 뻐꾸기 울음 천지였다. 이제야 편지 끝 구절에 말없음표 찍고 간 진달래꽃, 뻐꾸기 울음. 나는 어렸을 때 책이 없어 동화책 한 권조차 읽지 못했다. 나에겐 강과 산, 들과 나무, 꽃과 나비 이런 것들이 내가 읽은 동화책 전부였다. ‘어머니’하고 부르면 이런 몇 개의 단어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나이 들어 언어의 감옥에 갇혀 살아왔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푸르렀던 엊그제 잎새들이 샛노랗게 물이 들어 지상으로 낙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찬바람 불면 잎새들은 먼 겨울길을 떠날 것이다. 이제부터 겨울나무는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야한다. 자연보다 더 위대한 스승이 어디 있으랴.   

산녘의/가을 바람은/언제나/서 있다
그 길밖에 없는 불빛 거기서 끝나는
초저녁 먼 강물 끌고 와/함께 울던/그 산녘
               - 필자의 ‘어머니 52’

  내 고향 들녘에는 세 개의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큰 개천, 가운데 개천 그리고 작은 개천이었다. 오래 전에 경지 정책으로 가운데 개천이 사라졌다. 그 곳은 갈대밭, 버들개지, 창포들이 무성했고 말잠자리, 물총새, 참게, 메기, 장어, 대합, 소금쟁이 등 없는 것이 없는 자연의 보고였다. 그것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굽어진 개천길 그 산녘에서 가을 바람은 언제나 어머니처럼 서 있었다. 노을에 물든 강물을 끌고와 바람과 함께 울었던, 물총새가 쉬었다 간 그 산녘이었다. 

산은/달 때문에 저리도 높고
들은/달 때문에 저리도 멀다
 일생을 기다려야하는 산
 일생을 보내야하는 들
                 - 필자의 ‘어머니 44’

  나는 화가나, 서예가쯤은 될지 몰라도 시인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한번도 백일장에 나가본 적 없고, 시를 써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나는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고향의 산과 들 때문이었던 같고 산에 뜬 달과 들에 비친 달빛 때문이었던 같다.
  나는 산과 들과 달 때문에 내가 태어나지는 않았을까. 어렸을 적 매일 산을 넘고 들을 건넜던 것을 보면. 밤이면 그 길로 달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던 것을 보면 그렇지 않았을까.
  이제야 ‘어머니’ 시집을 냈다.

  10여년을 어머니 생각만하며 시를 썼다. 내게서 어머니를 보내드려야겠다. 이제 나는 또 하나의 누군가에 진 빚을 갚으며 살아가야 한다. 세상엔 돈으로 갚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내게 있다. 이제 나는 또 하나의 낯선 언어의 감옥으로 긴 형을 살기 위해 가야한다. 
  낙엽이 우수수 지는 만추의 저녁이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만은 언제나 울먹이는 어린아이였다. 그래서 이렇게 예순여섯이라는 나이를 먹은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