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가슴 한 녘 하현달로 지나가는
초겨울
달빛 실은
내 사랑
한 척 배
울음도 나이가 들면
들녘에서 맴도는가
- 「아내․1」
큰 아이가 시집을 갔다. 34살이니 아내와 함께 한 지가 벌써 35년이나 되었다. 봄에 만났는데 벌써 초겨울이 되었다. 햇살이 가득 했는데 이제는 달빛이 가득하다. 아내는 눈부셨는데 지금은 그윽하다.
언제나 가슴 한 녘 하현달로 지나가는 내 아내. 울음은 나이가 들었어도 들녘에서 맴도는가 보다. 애기를 낳아 키우고 공부 가르치고 시집을 보내는 먼 세월을 허겁지겁 살아온 아내는 참으로 대단하다.
아내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정년을 했고 나는 대학 교수로 이제 정년을 한다. 폭풍우를 만나기도 했지만 우리는 용케도 살아남았다. 전부 아내 덕분이다.
겨울비는
애잔히도
빈 어깨를
적시고
띄어쓰지 못한 적막
부엉새 울음 같은
내 고향 먼 세월을 돌아
이순에서 굽을 튼다
- 「아내․2」
초겨울비가 애잔히도 아내의 야윈 어깨를 적신다. 적막도 띄어쓰지 못한, 지난날 부엉새 울음 같은 내 고향. 먼 들녘을 돌아 이순의 나이에 이제금 굽을 트는 아내.
교직 사표를 냈을 때 아무 말이 없었던 아내. 묵묵히 내 하고자 하는 일을 저만치서 지켜보며 응원해주었던 내 아내.
그래도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졌다. 부엉새 울음 같고 뻐꾹새 울음 같은 내 이십여년의 나그네 생활. 그래도 강물은 유유히 흘렀고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달빛 실은 한 척 배가 이순에서 굽을 틀었으니 이만한 은총이 어디 있으랴. 참으로 우리는 선택 받은 사람이었다. 이런 아내를 누가 내게 보내왔을꼬.
초승달은
가다가
어디쯤서
머무는가
새벽 없는 불빛을
하늘 없는 물빛을
흑백의 건반 두드리는
내 인생
편지 몇 줄
- 「아내․3」
초승달은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고 내 아내를 생각나게 한다. 퇴근길 하늘엔 언제나 초승달이 떴다. 머무는 곳이 어머니가 있을 것 같고 아내가 나를 기다릴 것만 같다.
새벽 없는 불빛을 하늘 없는 물빛을 흑백의 건반을 두드리며 살아온 내 인생. 고작 편지 몇 줄이 전부였는데 그것도 인생이라며 낙서하듯 써놓고 가버린 세월, 그것은 준엄한 경구였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먼 것, 가까운 것 그것이 세월이고 인생이다.
큰 아이가 시집을 갔다. 우리가 살아온 길을 다시 살아가야할 큰 아이. 지나고 보면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지 가시밭길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세상을 그렇게 살아왔다. 내 아이는 나보다도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분명 그럴 것이다.
세상에 내 아내만한 사람은 없다. 지난날 아내가 나를 지켜보듯 이제 아내는 아이를 그렇게 지켜볼 것이다. 어머니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 내 아내는 죽을 때까지 그런 사람이다.